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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May 18. 2020

[배유기] 3화_ 신입기자의 일일 선수 체험기

- 초보기자의 배구판 3년 유랑기

3-1


입사 이후 나를 알린 기사가 하나 있었다. ‘신입 기자, 일일 선수 체험’ 기사였다. 영상 촬영까지 한 파격적 기사여서 많은 관계자들이 그걸 보고 나를 알아보곤 했다.


이 아이템은 내가 최종면접 당시 제안한 것이었다. 만약 취재기자가 된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으냐는 질문이 내게 주어졌고,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당시 국장께선...


“네가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바로 쓸 준비 해”


라며 입사하자마자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아직 회사에 적응도 제대로 못했는데 곧장 구단을 찾아가 선수들과 만나고 훈련을 하라니. 그때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때가 4월 말 정도였다. 시즌이 끝나고 선수들이 한창 휴가를 보낼 때다. 그래서 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인 팀이 몇 없었다. 다행히 팀 선정은 국장께서 해주셨다. 처음에는 한국전력과 접선했다. 그런데 일정 상 불발됐다. 그래서 결국 KB손해보험으로 가게 됐다.


'예비군 자존심'을 들먹이며 열심히 했다. 물론 자존심만으로 되는 건 아니었다.


당시 KB손해보험은 감독직이 공백인 상황이었다. 수석코치였던 권순찬 코치와 이야기해 일이 진행됐다. 일찌감치 훈련장에 도착해 몸을 풀며 선수들을 기다렸다. 나는 일일 막내 선수로 소개를 받았다.


다행히(?)도 그날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휴가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선수들이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벼운 체력훈련만 할 예정이었다. 물론 내겐 그리 가볍지 않았다.


전역 후 4년이 지나고 제대로 된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던 터라 걱정했다.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됐다. 선수들이 하는 웨이트 프로그램을 무게만 줄인 채 그대로 다 해냈다. 처음 본 막내에게 폭풍 잔소리를 퍼붓던 김진만 당시 선수(현 KB손해보험 코치)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웨이트로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곧바로 달리기가 이어졌다. 코트를 무려 40바퀴 돌아야 했다. 그것도 매 바퀴 시간제한이 있었다. 시작은 했지만 끝내 6바퀴째에 포기하고 말았다.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부여잡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걸 기획했을까' 싶은 그 기사.

3-2


할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이목을 꽤 끌었다. 당시 V-리그 시즌이 끝나고 좀처럼 기사가 없던 터라 네이버 측에서 굉장히 반가워했다. 영상까지 딸린 기사여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무려 2주 가까이 네이버 배구 페이지 메인에 올라와 있는 영광을 누렸다. 


이렇게 오래 올라가 있으니 반응이 꽤 뜨거웠다. 특히 툭하면 포털 페이지를 보는 선배 기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후 현장을 나가면 처음 보는 선배들이 뒤에서 나를 보고 웃는 걸 자주 봤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인사를 해보고는 알 수 있었다. 모두 내게 건네는 첫마디가 ‘영상 잘 봤어요’였다. 지금 생각해도 무지하게 민망하다.


이 기사는 아직도 관계자들과 만나면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 팀에 가서도 체험해주세요’라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여자 팀에 가서 훈련받는 걸 기획하기도 했다. IBK기업은행으로 가서 ‘호랑이’ 이정철 감독에게 훈련받는 그림을 그리고 기획했는데, 아쉽게도 이정철 감독께서 물러나면서 무산됐다.


새로 부임한 감독도, 인터뷰하는 기자도 서툴었던 인터뷰.


3-3


그리고 내가 체험하던 그 날, KB손해보험에 새 감독이 왔다. 당시 수석 코치던 권순찬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된 것이다. 오전에는 코치였지만 오후에 훈련을 마치고 집에 갈 때가 되니 감독이 되어 있었다. 


기자라면 특종을 놓쳐선 안 된다. 새 감독이 왔다는 소식 정도면 곧바로 기사를 써도 무리가 없는 정도의 소재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 인터뷰를 했다면 대박이 났을 거다. 그렇지만 그럴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막 입사 일주일 째여서 생각조차 못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몸이 너무 힘들어 집에 가고픈 생각이 더 컸다. 당시 현장에 있던 KB손해보험 프런트 직원들도 내 태도에 당황했다는 후문.


그래도 그 연을 이용해 권 감독과 인터뷰를 성사할 수 있었다. 훈련 날은 금요일이었고, 인터뷰는 돌아오는 월요일 오전에 진행했다. 운 좋게도 내가 권 감독의 첫 인터뷰를 맡을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양복을 입고 어색해하며 인터뷰에 답하던 권 감독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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