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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May 26. 2020

[배유기] 4화_ 올림픽 본선 진출, 그 영광의 순간

- 초보기자의 배구판 3년 유랑기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따낸 여자배구대표팀 14명.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다들 몸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끝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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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구 기자 생활 중 가장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을지 생각해봤다. 답은 의외로 쉬웠다. 지난 2020년 1월, 태국에서 보낸 일주일이었다.


배구 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국제대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FIVB(국제배구연맹)가 주관하는 세계배구선수권대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올림픽이다. 배구 종목만 따지고 보면 배구선수권이 더 권위 있는 대회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올림픽 무대를 결코 무시할 순 없다. 올림픽은 전 세계 모든 운동선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올해 초 한국 배구는 2020 도쿄올림픽(지금은 개최가 불투명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 남자부와 여자부 1위 팀만 본선에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시험대,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최종예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배구는 태국에서, 남자배구는 중국에서 대회가 열렸다. 


그중에서도 여자배구가 더 관심을 끌었다. 진출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이었기 때문이다. 자타공인 배구여제 김연경을 필두로 아시아예선 진출국 중 가장 전력이 좋은 팀으로 평가받았다. 중동 팀들이 위협적인 남자배구와 달리 여자배구는 태국 정도만 유력한 경쟁국이었다.


단순히 본선 진출 말고도 여러 스토리가 있었다. 김연경을 비롯해 양효진, 김수지, 김해란 등 황금 세대의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김연경의 뒤를 잇는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였다. 배구 계 첫 외국인감독,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이 만들어가는 ‘팀 코리아’ 역시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이런 스토리를 배구전문지가 놓칠 수 없었다. 당시 배구팀에서 가장 연차가 높던(4년차였지만 제일 선배였다) 내가 취재를 가게 됐다. 



결승전이 끝나고 회식 자리에 동행했다. 도쿄올림픽인 만큼 본선 진출팀에게는 '다루마 인형'이 주어졌다. 선수단은 여기에 각자 사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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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관심은 결승전을 향했다. 사실상 태국과 한국을 꺾을 만한 경쟁국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장 김연경이 예선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김연경뿐 아니라 다른 주전급 선수들도 예선전서 제 컨디션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경기를 이기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결승으로 다가갈수록 걱정은 커졌다.


결국 일이 터졌다. 김연경이 심각한 복부 통증을 호소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재영까지도 허리 통증 때문에 훈련에 불참하는 등 여기저기서 선수들이 고통스러워했다. 시즌 중간에 대회를 치르느라 아프지 않은 선수가 없었다.


현장에선 난리가 났다. 자칫 선수들이 흔들릴 수 있어 협회 측은 선수들 부상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현장에 있는 내게 여기저기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진짜 김연경 못 나오냐, 이재영은 왜 훈련 안 했냐’ 식이었다. 


‘기자는 아는 순간 쓸 줄 알아야 한다’라고 배웠다. 현지 여기저기서 들은 내용으로 종합해볼 때, 선수들에게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결승전에 최상의 전력을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사를 작성해 내지 못했다. 혹여나 내 기사로 불안감이 커지고, 선수들을 흔들까 봐 그랬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잠시 ‘한국인’ 역할을 하고 싶었다.


태국과 결승전 당일은 그야말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오천 정도 되는 내부가 홈팬들로 가득했다. 갖가지 응원도구로 무장한 사람들은 태국의 올림픽 진출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걱정과 달리 결승전에는 한국의 베스트 멤버들이 총출동했다. 몸이 불편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초반부터 태국을 강하게 몰아쳤다. 홈팬들의 일방적 응원에도 선수들은 보란 듯이 점수를 쌓아갔다. 나 역시 결승만큼은 잠시 본업을 내려놓고, 응원에 힘을 줬다. 


한국은 일방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를 주물렀다. 결국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거두고 올림픽 진출권을 확보했다. 선수들은 환호와 함께 눈물을 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응원단에서 다시 기자로 돌아왔다. 취재를 위해 코트 아래로 내려갔다.


후에 기사가 여럿 나갔지만, 부상이 심각했던 김연경은 진통제를 투여해 통증을 참고 뛴 것이었다. 결국 부상 부위가 이전보다 더 커져 한 달 정도 치료에 매진하기도 했다. 이재영은 아침까지만 해도 허리가 아파 일어나질 못했는데, 경기 시작 전 갑자기 통증이 사라져 나선 거라고. 그 외에 다른 선수들도 눈부신 투혼을 선보였다.


이런 보도를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참 분에 넘치는 기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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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나 말고도 다른 매체 기자들이 몇 명 있었다. 그렇지만 결승 이후 인터뷰만큼은 내가 1번 보도였으면 했다. 시상식과 축하 시간이 지나고 곧바로 김연경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원했던 1번 보도를 할 수 있었다.


스포츠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대회인 올림픽. 그곳에 진출을 확정한 날 주장의 인터뷰. 이걸 내가 가장 먼저 포털에 올려 팬들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은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은 기사로 이미 몇 차례 냈는데, 하나 제대로 이야기 못한 것이 있다. 외국인감독 아래서 수석코치로 활약한 강성형 코치 이야기다. 강 코치는 이번 국가대표 코치 직이 첫 여자배구 지도자 경험이어서(이전까지는 남자배구만 했다) 정말 많은 연구와 노력을 들였다. 외국인감독이 한국에 없을 때에도 홀로 리그를 돌며 선수들을 분석하고 평가했다.  선수들이 외국인감독에게 하지 못할 고민 등을 들어주면서 소통 역할이 되기도 했다. 또 감독은 선수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공을 때려주면서 훈련하는 것이 안 된다. 강 코치는 이 부분을 채워줬다. 서로 상부상조가 잘 된 셈이었다.


대회 기간, 강 코치가 선수들에게 직접 공을 쳐 주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그만 허리를 삐끗한 것이다. 대회 중간에 일이 벌어져서 여러모로 고생했다. 다치고 난 다음날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대회 도중 코치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제대로 치료를 받고 나을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강 코치와 인터뷰를 위해 몇 차례 연락을 했다. 그렇지만 강 코치가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했다. ‘감독도 아니고 코치가 인터뷰해서 되겠느냐’라는 이야기였다. 각 잡고 하는 인터뷰가 부담스러우면 간단한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도 마련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무산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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