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무척 많은 편이다. 미국의 아칸소주는 남한 면적보다 1.3배 크지만 인구는 300만 명 정도다. 그래도 여긴 인구가 많은 편이다. 몬태나주는 면적이 네 배 가까이 되지만 인구는 백만 명 정도다. 그나마 많이 증가한 거다. 예전엔 8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수도권과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되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고의가 아닌 한 거리나 차 안에서 살짝 부딪쳐도 대체로 이해하는 편이다. 이렇게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지내던 우리나라가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를 두는 관행이 생겨났다.
모르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기란 무척 쉬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마라톤인 경우가 많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적당히 속도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거칠거나 곡선 구간에서 자동차 속도를 너무 높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거리(distance)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를 통제하고 소유하려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엔 속박조차 달콤하지만, 꿀이 이내 물리듯이 지나치게 좋은 것은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되 따로 떨어져 있으라는 시인의 충고는 놀랍다.
함께 살기 위해선 우선 서로 떨어져 사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도 있다. 자신들의 사랑을 시험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정서적 유대가 멀어지지 않도록 함께 상의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아웅다웅하는 커플이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위태로워 보여도 정서적 유대가 멀어진 사람들과는 달리 헤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언제 다투었느냐는 듯이 매우 친밀한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장기간 또는 평생을 사는 파트너와는 이따금씩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정신적인 19번 방뿐만이 아니라 형편이 허락한다면 물리적인 19번 방도 필요하다. 이 공간(space)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시간은 보통 며칠부터 몇 주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 시간 동안은 전화나 문자도 보내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본인이나 상대편이 이런 타임 오프를 요구하는 건 대체로 자신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너무 숨 가빠서 부응할 수 없을 때다. 하지만 파트너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하는 한편 그 기간이 끝난 후 어떠한 달콤한 보상이 있는지 계획을 공유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서서히 결별하기 위한 수순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금세기에 유래가 없는 팬데믹을 맞이해 가족을 제외하고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계기를 삼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깝다는 구실로 그들의 영역을 무단 침입한 일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