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거래로 변질되는 순간 일어나는 일들
예전엔 결혼하는 커플의 학력이 같거나 남자가 더 높은 경우가 많았다. 여자가 유명대학 출신인데 비해 남자가 그렇지 못하면 화제가 되는 일이 있었다. 지금은 여자의 학력이 더 높은 경우를 자주 본다. 후배 중에도 이런 사례가 최근에 두 건 있었는데, 결혼생활이 순항 중인듯하다.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학력이야 비교적 사소한 부분이고 사회, 경제적으로 격차가 큰 경우가 가끔 본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니 어떤 경우라도 예전과 같은 파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편의 교육 수준이 더 높은 게 일반적이었으나 2010년경에는 차이가 없더니 2015년엔 오히려 아내의 교육 수준이 남편을 추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의 학력 못지않게 경제력을 중시하는 건 본인들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2세를 경쟁력 있게 키워내야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할 순 없지만 결혼을 두고 손익을 따지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도 없다. 결혼이란 서로의 이력이 어떻든 서로 연합하고 짝이 되어 의기투합하는 상태를 말한다.
결혼이 거래로 전락한 순간 패역하고 비루하며 남루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뿐이다. 조건만 보고 한 결혼은 대체로 결말이 좋지 않았다. 조건은 변하게 마련이고 결혼 전 장점으로 보이던 모든 게 결혼 후엔 단점이더라는 결혼 10년 차 지인의 말이 기억난다. 결혼은 철저히 현실이고 서로의 모든 걸 가감 없이 드러내는 상태니 연애와는 크게 다르다. 세포가 일 년이면 전부 교체되듯이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단점이 부각되어 꼴도 보기 싫은 순간이 닥칠 수 있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민낯을 다 보여줘야 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최선의 모습만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 듯하다. 영화 페인티드 베일에서도 ‘여자는 남자의 장점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오히려 약한 부분이 드러나야 지속되는 듯하다.
요즘이야 국제결혼이 많지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던 때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와 옥중 결혼했던 가네다 후미꼬가 생각난다. 남편은 식민지 출신으로 아무 미래가 없는데도 연인이 되어 함께 천황 암살을 기도하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또 비행시간만 22시간이 걸린다는 페루에서 다섯 명의 자매가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국내에 정착한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손익을 거의 따지지 않는 사랑의 힘은 언젠가 만날 외계 생명에게도 소개할 수 있는 인류만의 유산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