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숲 속 서재에서

by 김광훈 Kai H

가을은 어쩌면 단풍나무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단풍이 드는 나무는 단풍나무가 유일한 건 아닌데 단풍나무라는 영예를 차지한 것만 해도 단풍나무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활엽수가 수분을 잃으면서 볼품없이 말라비틀어지는 것과 달리 단풍나무는 오랫동안 붉은색을 유지하면서 가을이 깊어갈수록 더욱더 짙은 색으로 채색을 하는 듯하다. 마치 밤새 뿌리에서 밀어올 린 물감을 각 잎새에 공급한 후 가을바람이라는 붓을 이용해 붓질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색 핏기를 잃고 화구(pearly gate)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가랑잎이 자아내는 쓸쓸한 분위기는 단풍이 주는 위안으로 충분히 견딜만하다.


높은 곳에 달려 있다 낙하하는 나뭇잎은 그동안 누린 온갖 즐거움 예컨대 태양과 바람을 독점한 대가일까? 추락하는 모습을 가장 오래 또 가장 공공연히 보여야 하는 처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동안 몇 차례의 제법 센 바람에도 붙어있던 나뭇잎들이 가벼운 바람에도 맥을 못 추고 우수수 떨어진다는 점이다. 아마도 낙타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last straw) 하나의 힘이 작용했다 보다.


만추에 접어들면서 낙하하는 유명인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한 가지 특징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본인의 노력과 알 수 없는 작용에 의해 유명인이 된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큰 곤경(predicament)에 처한 적도 있다고 하나 우리네 일반인들이 거치기 마련인 신고(adversity)를 피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의 특징은 보통 사람들이 현혹하기 쉬운 후광(halo effect)을 적절히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착시효과의 맹점을 파고든 걸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널리 통용되는 생존 전략이니까.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신들에게 향하는 검(backfire)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오른 용이 후회한다는 항룡유회가 새삼 생각나는 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심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