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길을 산책해보았다. 턱이 진 부분에 갇힌 물을 한껏 머금은 낙엽 사이로 작은 물고기 떼가 한가로이 헤엄친다. 실개천이다 보니 건기일 땐 이내 바닥을 보이는데 이 물고기들이 어디서 오는지 늘 의문을 품곤 했다. 사막의 와디처럼 비가 올 때만 일시적으로 간헐천이 되어 물 고기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은 물고기 개체 수가 워낙 적은 데다 서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와디에서와 같이 괭이갈매기가 날아드는 장면은 볼 수 없다. 또한 비 온 뒤 몇 시간이면 말라버리기도 하는 건천이라 이곳 물고기는 새끼를 낳는 거피와는 달리 흙 속에 알을 낳았다가 우기가 되면 부화하는 생존 방식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엔 온통 인간에 대한 관심뿐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생명체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얼마 후엔 푸른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좀작살나무를 만나게 되고 바로 아래 풀숲에 빨갛고 하얀 꽃이 좁쌀처럼 피어 있는 여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 수크령도 돌아올 것이다. 수크령은 온대나 열대를 가리지 않고 널리 분포해 있지만 볏과인데도, 식량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다. 벼와 비교하면 인류에 대한 기여도가 천지 차다. 하지만 인간에게 유익한지 여부만으로 생명체의 존재 가치를 따지는 건 순전히 이기적인 발상인지도 모른다.
수령이 백 년은 족히 넘겼을 소나무는 입구부터 여전히 그 위용을 드러낸다. 안면도에서 본 소나무 군락을 능가할 정도로 울창하다. 날씨는 더워도, 더위에 녹아 노파의 백발처럼 가늘게 휘어진 열대의 소나무와는 달리 왕릉의 소나무는 유달리 푸르다.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 벌거벗은 힘(naked strength)을 노래했던 참나무도 우거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드름병을 방지하려고 끈끈이 테이프로 감싼 것이 적지 않다. 인간보다 훨씬 더 수명이 길지만, 나무도 때론 인간의 힘을 빌려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보니 생명이란 공존할 때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마리의 벌 떼가 물 마시려고 급수대 주변에 날아든다. 그 작고 여린 날개를 쉼 없이 움직이며 머리를 맞댄 장면은 그들도 이 지구의 소중한 가족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길 국화와 작별하고 몇 걸음 옮기먼 이윽고 평지가 계속되다 언덕이 나타난다. 바로 왼편에는 조선 시대 왕의 총애 속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결국에는 사약을 받고 비명에 간 장희빈 (대빈) 묘가 있다. 권력과 사랑의 무상함이 느껴지며 잠시 숙연해지는 곳이다.
참나무가 무성한 곳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서어나무 길로 들어서면 매끈하고 유연하게 공간을 자유로운 상상으로 채우고 있는 서어나무 군락이 있는 곳이다. 서어나무는 산속의 못생긴 나무가 생명을 오래 보존하는 것처럼 이렇다 할 용도가 없어 생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베어질 일이 거의 없다. 장자의 도를 일찍부터 깨우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니 장자보다 더 이전부터 존재했을 테니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