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미각의 경험은 다른 감각에 비해 기억의 지속력이 약한데 추수 감사절은 달랐다. 아침 일찍부터 칠면조를 오븐에 통째로 넣고 요리를 했었다. 고기 자체가 크다 보니 오븐 온도가 너무 높으면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을 때가 있었다. 고기 속이 얼마나 익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칠면조에 온도계를 찔러 표시되는 눈금을 보고 판단했던 기억이 난다. 화씨 325도(165℃)로 네 시간 정도 요리하라는 레시피가 있었다. 궁금한 나머지 가끔 오븐을 열어 보곤 했다.
칠면조를 굽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다. 버터를 바르고 후추를 뿌린 다음 소금으로 간만 해도 맛이 좋았다. 하지만 올리브 오일, 다진 마늘, 잘게 썬 로즈메리, 후추, 소금에 바질(basil)을 첨가하면 맛이 참 오묘했다. 고소한 칠면조의 맛 외에 마늘의 감칠맛, 솔잎 향이 연상되는 로즈메리와, 후추 맛이 돌다가 달콤한 박하 향을 내는 바질은 어쩌다 한 번 칠면조를 먹는 나와 같은 외국인의 미각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제는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는 영혼의 음식 소울 푸드(soul food)는 본래 아프리카 출신 남부 미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을 가리킨다. 우리의 족발과 유사한 햄학(ham hock)이 대표적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컴포트 푸드(comfort food)’가 있다.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락함을 느끼게 하는 음식을 일컫는다. 눈에 띌 만큼 급속히 심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뜻 이리라. 특히 어릴 적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그렇다.
카스텔라(custard cake)나 가래떡의 그 마닐마닐한 맛은 지금까지도 나를 행복감에 한껏 취하게 한다. 포도, 체리, 블루베리, 딸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이들과 연관된 추억은 모두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들뿐이다. 포도 한 송이를 받으면 마지막 한 알이 남을 때까지 미각의 제국 속에서 황제가 된다.
인생에 행복한 일이 많지만, 요리처럼 감동적인 작품이 또 있을까? 인간의 위신을 높여 만족감을 주는 각종 소도구가 있다. 그런 것은 찰나의 기쁨이고 영속적이지 못하다. 또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훌륭한 아로마와 맛을 내는 요리만큼 우리 생명에 직접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없다. 실제로 인간의 상상력과 각종 요리기구가 만들어내는 요리는 각 재료가 불(fire)과 미세하게 교섭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명화에 등장하는 오달리스크는 그녀의 외관을 복제한 것일 뿐 그녀 자신은 아니다. 요리는 다르다. 요리는 인간의 육체와 마음 일부가 되면서 자리 잡는다. 스파게티만 해도 바닷속 풍광의 아우라를 간직한 해산물의 풍미와 작열하는 태양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채소의 내력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리가 일반 예술품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일회성이고, 사라지면 다시는 똑같이 재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만한 희소성은 찾을 수 없다.
한 번은 일산의 어느 중국 요리 전문점에 갔는데 그날따라 맛이 달랐다. 지배인에게 주방장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주저하다 그날은 주방장이 쉬는 날이라고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방장이 일하지 않는 날은 단골손님도 뜸하다고 했다. 셰프의 힘은 이렇게 대단하다.
하지만 힘 있는 셰프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요리하지는 않지만, 요리에 대한 안목이 높고 입맛도 까다로운 고객이 있어야 한다. 유명 요리사가 타계했다고 대통령이 애도사를 발표하는 풍토이기에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프랑스는 러시아를 제외하곤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다 보니 각종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한 점도 한몫하기는 했지만… 큰 식당의 셰프를 예로 들었으나 규모가 작은 음식점도 프로정신을 가진 곳이 많다.
서래마을 어느 프랑스 요리 전문식당은 후식으로 나오는 홍차의 종류만 해도 네 가지나 되며 고객이 향을 맡아보고 고를 수 있게 한다. 이런 자세로 자신의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려 는 마음으로 정진하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