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에서

by 김광훈 Kai H

어느 지인은 천리포 수목원이 수목원 중 가장 아름답다고 격찬한 적이 있다 (입장료 대비 최고의 수목원은 미동산과 물향기라고 생각한다)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계 한국인' 민병갈이 사심 없이 정성을 다해 조경한 곳이라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더욱이 해송 사이로 보이는 서해안의 모습은 절경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그는 죽어서 개구리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예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약하다고 생각해 비관하던 토끼들이 자신들의 출현에 놀라 물속으로 뛰어드는 개구리를 보고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생태계를 교란시켰던 황소개구리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구리는 약자다.

하지만 Joseph Heller의 Catch-22라는 책을 읽다 보니 개구리는 무려 5억 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켜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이 현재 강하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으며 천하무적 (second to none)의 무력이 있고 세계 최고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지만 개구리만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일견 겸손한 듯 보이지만, 겨우 몇백 년 전에 국가가 수립되어 1세기도 안 되는 동안 강대국의 지위를 누린 미국인의 오만이 언뜻 보이는 것은 근세에 들어와 인조 같은 어벙한 임금 때문에 중국의 영향권에 들긴 했지만 오천 년을 이어온 자부심 때문일까.

인류가 길어야 겨우 수백만 년 전에 이 행성에 출현했으니 개구리 처지에선 가소로울 수도 있다. 어쩐지 개구리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당랑거철처럼)이 예사롭지 않다고 전부터 느끼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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