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다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용기

by 김광훈 Kai H

어릴 적 사촌 형의 책꽂이에 ‘솔베이지의 노래’라는 책이 있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솔베이지를 두고 떠난 남자가 돌아오다가 도적을 만나 모든 걸 다 빼앗기고 그 이후 모험과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팔다 오랜만에 돌아왔다. 양심 상 차마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나중에야 찾아가니 솔베이지는 백발이 되어 있었고 그를 반갑게 안아 주었다. 예전에 자주 가던 카페엔 이 솔베이지 노래가 늘 잔잔히 흐르곤 했었다. 물론 민화지만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행복한 연인은 부귀 빈천을 떠나 함께 한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심지어 자주 다투더라도 말이다.


신라시대의 일이다. 설씨녀의 아버지가 군역을 치러야 하나 건강과 집안 형편상 3년간 입대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 상황을 목격한 가실이 평소 흠모하던 설씨녀를 위해 자원하고 나섰다. 이에 감동한 설씨녀가 거울을 깨 가실에게 나누어 주며 기다리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4년이 지나도 가실은 돌아오지 않았다. 6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남자의 소실 즉 첩이 되도록 종용한다. 때마침 가실이 돌아와 이들은 재회하고 헤어진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해로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지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업적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불시착>에선 죽음을 무릅쓴 사랑의 용기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절박한 심정, 죽음을 불사하는 감정을 이용해 경쟁자들이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게 못내 안타까웠다.


미국의 워싱턴 공항에서 출근 에어 셔틀을 타던 남녀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서로 말은 하지 않았다. 여자가 공항 택시를 타고 뒤돌아보니 남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기사에게 멈춰달라고 했지만, 무심한 기사는 차를 멈추지 않고 계속 갔다. 여자가 자기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차창밖으로 던졌다. 하지만 그 남자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 쪽지를 받지 못했다. 이윽고 미팅에 참석한 여자는 계속 그 남자 생각이나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공항으로 달려왔다. 그 남자가 퇴근할 때까지 계속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려 게이트로 가는데 그 남자가 보였다. 남자가 말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요? 당신을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결혼했다.

미국에 가면서 기내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생각난다. “이 모호한 세계에서 이 정도로 확실한 일은 단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으며 인생을 아무리 여러 번 다시 산다 해도 재현되지는 않는다.”사랑에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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