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기에 늙는다

by 김광훈 Kai H

연인들조차 상대방으로 말미암아 화가 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언짢은 일이 겹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분노는 자석과 같아 가까운 데서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늘 희생양이 된다. DH 로렌스의 역작 ‘아들과 연인’에 보면 부부싸움을 전투(battle)라고 묘사할 정도로 다툼은 때로 격렬할 수 있다. 그래도 만남이나 결혼이 지속하는 것은 다투면서 깊은 정이 든 데다 보완적인 관계다 보니 평소 우호적인 감정이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신혼 때에는 누구나 이작 펄먼의 바이올린과 존 윌리엄스의 기타처럼 각자의 소리를 분명하게 내면서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절묘한 하모니를 구현한다. 감미로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따금 완벽해 보이는 연인도 있지만, 사랑싸움이란 결별한 커플에게만 끝나는 법이다. 피할 수 없다면 국가 간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충돌을 최대한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또한 로맨틱한 추억의 당분을 평소 충분히 저장해야 인생의 극한 시절을 견디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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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대개 고독과 경제적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은 82% 이상의 노인이 기억의 상실(memory loss)을 손꼽는다. 인간은 기억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은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언젠가 여행하면서 들던 애리조나의 선시티(Sun City)는 노인과 은퇴자의 천국이다.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어떤 연로한 남자가 처음 만난 할머니에게 반해 프러포즈했는데 그녀가 예스를 했는지 노를 했는지 기억이 아스라해 밤새 고민했다. 다음날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녀 역시 전날 만난 할아버지에게 예스를 하긴 했는데 누구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밤을 지새웠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옆에 있는 사람을 원 없이 사랑하자. 사람은 사랑하지 않기에 늙는다. 명부(冥府)의 세계로 떠나 더는 그를 사랑할 수 없을 때 여한이 남지 않도록 그를 사랑해야 한다. 여자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에 관심을 두지 않는 초식남이 증가하는 것은 전 지구적인 문제다. 이러다가 사랑이 마치 퇴행 기관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고래를 포획할 때 쓰는 밧줄은 전체 굵기가 1.5센티미터로 그다지 강하게 보이지 않지만 무려 3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아름다운 사랑은 때로는 잘 엮어진 밧줄과 같고 때로는 가로와 세로로 짠 피륙과도 같아 인류 전체로는 어떤 불행도 거뜬히 이겨내는 놀라운 힘이 있다. 끊임없이 가두려는 힘과 지속적으로 이탈하려는 힘이 겨루는 게 남녀관계의 본질이다. 그렇다 해도 여자가 남자를 자신의 뜻대로 고치려는 생각과,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려는 마음만 버리면 그대가 지상 어디에 있든 그곳이 샹그릴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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