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의 운명적인 만남
미국은 자본주의의 본산이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종교의 종주국이기도 하다. 축구 종가가 언제나 우승권에 드는 것은 아닌 것처럼 종주국의 위치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80% 이상의 사람들이 결혼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 비율이 50% 이하로 급락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독일에 주둔한 미사일 부대의 앨리스 중대장은 훤칠한 키에 미모의 장교다. 그녀는 아파치 헬기 조종사와 사랑에 빠져 전역하고 현재는 반도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개인 사(史)로 볼 때 이보다 더 큰 인생의 전환점에 서는 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여성이라고 해서 절대 불리하지 않은데도 전도유망한 군인의 길을 포기하게 한 것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이야기는 점점 신화가 되고 있다.
‘어린 왕자’ 저자인 생텍쥐페리의 마음을 가장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여자는 ‘파리의 지붕 위에 불을 뿜는 엘살바도르의 작은 화산’으로 불렸던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이다. 그녀는 사별한 남편 카리요의 유산을 정리하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들른다. 그리고 앙투안 생텍쥐페리와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미 프랑스 문학계에 ‘남방 우편기’로 이름을 날렸던 생텍쥐페리는 직업적인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했다. 그는 콘수엘로 일행에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름다운 전경과 주변의 계곡을 보여준다. 가벼운 비행기 멀미를 하는 콘수엘로에게 약을 주면서 잡았던 작은 손은 그를 이내 열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그녀의 아름다운 손을 영원히 차지하고 싶다며 청혼한다. 영어권에서 여자의 손을 잡고 제단으로 이끈다는 말은 결혼한다는 의미로 손은 남녀를 맺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단계이기도 하다.
사랑은 모든 조건을 무너뜨린다
1930년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더는 생텍쥐페리의 유배지가 아니었다. 새롭게 사랑하기 시작한 콘수엘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의 조건을 장황하게 늘어놓지만, 지금 함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기준이다. 기준을 무력하게 만드는 건 사랑뿐이다. 사랑만이 모든 조건을 무너뜨린다. A 클래스에 들지 못하면 어떤가. 체스 게임이 끝나면 왕이나 병졸이나 같은 상자에 들어가는 건 매한가지다.
사랑은 대체로 준비되지 않았을 때 대책 없이 찾아와 우리를 종종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가지만 젊은 날의 웃음과 사랑이 최고다.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도 끊임없는 진군이 필요하다. 진군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물론 상처를 입는 것은 필수다.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뚫고 가야 한다. 낙원으로 향하는 발길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저 간단(間斷) 없는 북소리에 맞추어, 목적지 부근에 도달했을 때의 광과 환희 그 감격의 순간을 떠올리며, 사랑을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