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는 한 사랑은 계속된다

by 김광훈 Kai H


과거에는 지체 있는 문벌이 아니면 대체로 자유연애를 했는데 유교에 바탕을 둔 신분질서가 확립되면서 남녀 간의 사랑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허점(loophole)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개가(改嫁)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보쌈과 같은 방식을 공공연히 허용해 청상과부에게도 살 길을 열어주는 지혜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래 규범에 의하면 처벌의 대상이었지만 일부 중동 국가에서 사실상 관례처럼 행해지는 돌팔매질과 같은 린치(lynch)가 자행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랑의 처지에서는 운신의 폭이 참으로 좁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은 사랑인데도 헤어져야 할 때가 적지 않았다. 예전에는 주로 강에서 많이 헤어졌던 것 같다. 역사상 최고의 연시(戀詩)라 할 수 있는 이백의 장간행은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애끊는 심정을 노래한다. 이 시를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뛰어난 역(英譯)으로 소개할 때도 ‘강상인(江商人)의 아내(The River-Merchant’s Wife)’라며 강(江)을 등장시키고 있다. 남자가 배를 타고 멀리 가면 언제 또 만날지 기약이 없었다. 특히 감각조차 없을 것 같던 나무뿌리까지 봄비가 스며들어 생기를 불어넣을 때의 이별은 단장(斷腸)의 고통을 준다.


오죽하면 ‘강에서 헤어지는 연인들의 눈물이 매년 쌓여 강물이 언제면 마를까’라는 시가 나왔을까. 그런데 화나 문학작품을 보면 근대는 물론이고 최근까지 이별의 장소가 열차 역으로 바뀌었다. 멀리 안나 카레니나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학도병으로나 또는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갈 때도 그랬고 논산 연무대에 입소할 때도 그랬다. 특히 예전의 열차는 몇 초 만에 시속 백 킬로미터에 도달하는 포르셰가 아니기에 연인이 서서히 가물가물해지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으려 열차를 따라 달리곤 했다. 개별적인 사정을 알 바 없는 무심한 열차가 멀어져 아득해지면 비극적인 마음이 가슴속에 스며들곤 했다.


‘이별’하면 솔베이지의 노래가 생각난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먼 이국땅으로 돈을 벌러 간 남편을 기다리던 늙은 아내 솔베이지의 가슴 시린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이별은 이젠 별로 없다. 세계 어디에 있든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안타까운 사랑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자나 전화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다. 그 사정 중에는 일부 중동 국가와 같이 제도적으로 만남이 제한된 일도 있지만, 일방의 사랑 또는 아예 교신 자체가 불가능한 사랑도 있다. 예컨대 한쪽은 이승에, 다른 한쪽은 이미 명부의 세계에 놓인 처연한 상태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시로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가 손꼽힌다. 안녹산(安祿山)의 난(亂) 중에 잃은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현종의 비통한 심정이 절절해 마치 최근에 일어난 일인 듯 생생하다. 특히 인계(人界)와 천상(天上)의 극명한 단절을 일깨워주는 부분에 이르면 슬픈 감정이 최고조에 달한다.


칼라일처럼,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자. 특별한 호감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수시로 꺼내보며 어떻게든 시간을 내 점화를 반복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저 마음속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니다. 표현하는 한 사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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