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칼럼이 생각난다
대학 입시 관련해 후폭풍이 거세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몇 달 전에 강조한 사항인데 실무 부처가 움직이지 않아 독려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는 여당의 시각이 있는 반면 입시를 5개월 정도 앞둔 시점이라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야당의 비판이 있다.
영어는 좋아하면 잘하고, 수학은 많이 풀면 잘하게 되고 과학은 머리가 좋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학습량의 50% 시간을 늘 할애했던 것 같다. 그 결과 기초가 부족했던 수학은 하위 40%, 영어는 상위 0.1% 이내에 들어 학업 성적에 관한 한 확률적으로만 존재하는 학생이었다. 당시엔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문과에 한해 J대와 K 대는 본고사에서 수학 대신 국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개별 입시 상담 때 담임 선생님도 영어가 특기니 모의고사 성적보다 두세 단계 위를 지원해도 되겠다는 말씀을 했다. 킬러 문항이 많은 본고사는 대체로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결정적인 시험이었다. 하지만 진학 상담한 지 며칠 안돼 본고사가 전격 폐지됐다. 입시를 불과 3개월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과외가 망국병이라고 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권위주의 시절이라 반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개혁을 하다 보면 억울한 선의의 피해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대학교에 진학했든 나의 역량이나 성격으로 볼 때 더 큰 직업적 성공을 거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영어 공부를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병역 비리 중 하나였던 카투사 차출 제도를 순전히 영어와 국사 시험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개혁을 단행한 것이었다. 당시 내 실력으론 합격이 불가능한 시험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최연소로 합격해 병역 의무를 다하면서 영어 연수를 겸하는 행운을 누렸다.
내가 배치된 부대의 소대장은 위컴 미 8군 사령관의 아들이었고 웨스트포인트 출신 중대장은 현역 육군 소장이 아버지라는 소문이 있었다. 약 10년 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미군 대령에게 물어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예전 중대장은 대령이 돼 다시 미 8군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고위직 자녀들이 솔선해서 최전방에 근무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힘을 느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6.25 사변 당시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참전해 전사한 것도 지도층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한가 생각하게 되는 감동 스토리였다. 이런 도덕적 용기와 각오가 없이는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단장은 우리가 훈련할 때마다 부관과 함께 야전을 직접 돌며 원 포인트 레슨을 하는 철저한 현장 중심의 지휘관이었다. 요즘에서야 깨달았는데 내가 신병으로 부대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존슨 사단장이 일행과 함께 막사에 들렀을 때 하필 내게 다가와 근무 여건에 만족하느냐고 재차 물어봤던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혁은 모순과 문제점이 극도로 표출될 때 얼른 손을 써야지 이런저런 지엽적인 사안이나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논점을 흐리는 작전에 말려들면 동력을 상실해 용두사미가 되기 마련이다. 하도급 문제라든가, 본분에서 벗어나 정치 세력으로 변질된 집단, 시대가 변해 이제는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특권, 우리 기업을 옥죄는 불합리한 규제, 기업 승계를 사실상 가로막아 기업 할 의욕을 꺾는 제도 등은 혁파돼야 한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지 어정쩡한 힘을 가하면 소뿔에 받혀 치명상을 입게 되고 소에게 자신감만 불어넣어 주는 부작용만 생긴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개혁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출처 : 중소기업뉴스(http://www.kbiz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