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매달리면 절대 안 된다. 왜 남의 의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되어도 자신이 책임지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 다른 사람들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대신 져 주는가. 절대 아니다. 혹시라도 남의 의견에 휘둘리고 있다면 도대체 나의 인생은 누구 것인가 생각하면 거기에 답이 있다.
지금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지만 본래 우산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1750년 영국 여행가, 자선가였던 조나스 한웨이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런던 거리를 활보한 뒤로는 남자들도 우산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단골 중국 음식점에 미모의 캡틴이 있었다. 일반 회사로 치면 대리급쯤 될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유능해 보이는 데다 서비스 감각도 남달랐다. 그런데 몇 년째 드나들다 보니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몇 달씩 보이지 않아 지배인에게 물어보니 일 년에 삼 개월 정도는 국외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9개월 동안 번 돈으로 여행하거나 혹은 요리 관련 학교에 다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부러웠다. 유능하니까 돌아오면 언제든지 복직이 되었다. 보통 직장인 같으면 경력 관리 때문에 쉽게 그만두지도 못한다. 또 대부분의 직장은 일단 나간 사람은 다시 받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이 드물던 때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일할 때는 사소한 것도 잘 챙겨야 (attention to details) 하지만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불구 소절(不拘小節)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못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보장된 미래란 없다. 확정된 일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가능성 하나를 붙들고 묵묵히 진군한 사람들에게만 허락하는 희열이 최고다.
또한,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기에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로 현재나 미래의 시간을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더 나쁜 건 술이나 약에 의존해 몸을 혹사하는 경우다. 몸이 손상되면 아무리 젊어도 후일을 기약할 수 없다. 현재 처지가 아무리 한심해도 젊은이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무한한 가능성이 그들 앞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물이었더라도 한 발을 이미 땅속에 둔 노인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지 않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명료한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태양은 몇십억 년 후 연료가 소진하면 소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태양이 없으면 일출(sunrise)도 없겠지만 죽음은 그때도 변치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