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60개 넣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무사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보다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세무사일을 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아주 옛날 같이 공부하던 형에게 10년 만에 연락해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장 세무사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수록 머리에는 느낌표가 아니라 물음표가 더 많아졌다. 세무사 예전처럼 같지 않다는 이야기, 자리 잡으려면 이제 꽤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결국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회사에서 하는 일과 아주 다른, 운동선수나 작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무사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삶을 택했다.
퇴사 통보를 결심한 날의 출근길도 어느 출근길과 다르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출장을 다녀와 양재천을 걸었다. 아... 나 이제 들어가면 말하겠구나. 이제 진짜 그만두는구나. 혼자 한시간 쯤 걷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팀장님께 말했다. 팀장님은 하루만 더 생각해보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하루가 지나도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팀장님, 지점장님과의 면담 후 나는 퇴사 확정자가 되어 2주간 회사를 더 다니게 되었다.
자유, 행복한 밥벌이, 꿈... 막상 퇴사를 통보하고 나에게 들이 닥친 것은 그런 거대 담론이 아니었다. 수습처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아는 세무사 형에게 슬쩍 나를 수습세무사으로 써줄 수 있지 않냤고 물었지만형은 아직은 그럴 형편이 안된다고 했다. 뭐 어차피 회사를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기로 결정한만큼 수습처 쯤은 발로 뛰며 혼자 힘으로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무법인과 개인세무사사무실에 이력서를 60개가 넘게 넣었다. 곧 퇴사자라는 직함을 달고 낮에 남은 업무를 정리하고 밤에 이력서를 쓰고, 넣었기를 반복했다. 혹시 면접보러 오라는 문자가 와 있을까 회사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퇴사일은 다가왔고, 나는 이직할 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회사 사람들은 이제 퇴사하면 떼돈 버는 거 아니냐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설렘과 이러다 수습처를 구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공존하는 하루하루 보냈다. 그러다 퇴근 길에 면접 보지 않겠냐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면접일이 언제죠?"
"오늘 저녁 8시에 시간되나요?"
"됩니다"
"그럼 오늘 바로 보죠 뭐"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