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날뻔 했다
강남역 인근 카페 저녁 8시. 나의 첫 수습세무사 채용 면접이 시작되었다.
"깅형의 패기넘치는 자소서가 마음에 들더만"
면접을 보러 온 세무법인의 대표세무사는 국세청 세무서장 출신으로 나이가 꽤 있으셨다. 대표세무사는 지금 상속세 조사 큰게 걸려있는데 그걸 좀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자소서를 읽어보니 딱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라고 했다. 내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다른 업무는 없냐고 하니, 다른 업무도 당연히 많다고 했다. 업무를 알려주는 사수는 있냐고 여쭤보니, 그냥 옆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면서 하면 된다고 했다.
대표세무사는 내가 마음에 든다며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직감적으로 저 세무법인에 가면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내가 머뭇거리니, 왜이렇게 자신감이 없냐고 버럭 화를 냈다.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한 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대표세무사도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일할 생각 있으면 내일 연락달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나의 첫 면접이 끝났다. 물론 연락하지 않았다.
이 면접을 본 후에 더 불안해졌다. 면접 보자는 연락이 없을 때는 막연히 불안했다면, 첫 면접 후에는 눈에 보일 듯 불안이 내 앞에 다가왔다.
며칠이 흘러 퇴사일이 이틀 남았을까. 또 한번 면접을 보러 오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 제안을 준 곳은 법인은 아니고 개인사무소였다.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저녁, 퇴근하고 면접을 보러 그 세무사사무소로 갔다. 면접을 본 대표세무사는 국세청 출신이 아닌 시험 출신의 젊은 세무사였다. 느낌이 좋았다. 대표세무사도 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세무사일을 시작했고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표세무사님도 나를 괜찮아 하는 거 같았다. 면접이 끝나고 면접 결과는 이틀 이내로 알려준다고 말했다. 나는 잘 부탁드다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같이 일하기 어려울 거 같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이가 다소 많기는 했지만 나름 세무와 유관 업종에서 일했다고 생각해 수습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다. 결국 세무서에서 수습을 받아야겠구나라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세무서 수습은 세무사 중 수습처를 구하지 못했거나 본인이 과세관청에서 수습을 받기 원할 시에 지원해서 수습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통상 세무사 업무를 직접 배우지 못해 조금 꺼려하는 수습처이다. 그리고 무급이다).
문자를 받은 다음날 점심 막무가내로 대표세무사에게 전화했다. 일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나를 불러주는 곳도 없었기에 적극적으로 어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았다.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꼭 ***세무사사무소에서 수습을 받고 싶습니다. 세무사님이 구하고 있는 사람에 제가 가장 적합할겁니다."
사실 떨어졌다 했는데 다시 연락해 일하고 싶다고하면 굉장한 민폐일 수 있다. 그래서 목소리가 떨렸나보다. 주저리주저리 나를 뽑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대표세무사는 웃더니 알겠다고, 그럼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간신히 수습처를 구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대표 세무사는 다 괜찮은데, 내가 본인보다 세무사 기수가 높아서 안뽑으려 했다고 했다. 나는 아주 예전에 세무사 시험을 붙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연어처럼 다시 돌아온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