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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Gang Feb 07. 2020

미국 교수, 제일 힘이 드는 것은요.. 바로

오늘 열심히 밀린 학교일을 하고 있는데 "띵!"하고 메일이 날아온다. 애플 와치의 작은 화면에서 내용은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보내는 이 이름에 일본어가 섞여 있기에 혼자서 "스팸인가?" 하며 아이폰 화면을 보니 메일의 첫 두줄이 나와 있는데 반가운 한국말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일본에 사시는 한 교수님께서 인터넷에 올린 나의 글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으셔서 물어보는 메일이었다.


물론 인터넷에 나의 인생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하고, 마치 무엇인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기도 하여 싱숭생숭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그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정보가 조금이나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서 일본에 계시는 한 한국 교수님의 메일이 반가우면서도 의외로 학생의 메일이 아니라 교수님의 메일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그분의 속속들이 인생은 모르지만, 아마도 나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낯선 일본에 가셨을 것이고, 거기서 또 누구 못지않게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지금의 위치에 계신 것이리라. 아마 지금도 그러겠지만, 한 때 각종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보고 "이민 가야겠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이러한 글에 어김없이 달리는 답변 중에 하나는 "이민 가서 성공할 정도의 노력이면 한국에서 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글이었다. 일본에 계신 그 교수님, 나, 그리고 수많은 외국에 계시는 한국 분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그 자리에 계시지 않을까 싶다.


그 교수님의 이런저런 질문 와중에 하나 느끼게 된 건, ‘아 이 분 나와 같은 감정선을 공유하고 계시는구나’였다.


이제 본격적인 이 글의 주제가 나온다. 바로 '외로움'이다. 미국 교수, 제일 힘이 드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아마 나의 박사과정과 한국 교수, 미국 교수되는 과정의 지나난 글을 꾹 참고 읽어주신 분이면 이런 질문을 하실 텐데 "가족 전체가 함께 미국에서 이민 가서 사시는데 외로움이 가장 힘든 건가요?"라고..


외로움은 간단하게는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연인과의 관계가 끝나거나 해서 홀로 남겨진 기분으로 많이 들 인식하지만, 익숙한 모든 것에서 떨어지게 되면 모든 것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2년 반이 지난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지만, 그전에 4년 박사과정 그리고 그 이전에 10개월 인도 생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의 인생은 한국에서 그리지 않았던가.


나의 첫마디 언어도 "엄마"였을 것이고, 첫걸음도 한국이었고, 첫 학교생활, 첫 싸움, 첫 만남, 첫 헤어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먹고 싶은 것, 먹기 싫은 것, 가고 싶은 곳, 가기 싫은 곳.. 등 이 모든 것들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던가. 그 익숙한 모든 것에서 떨어짐.. 그것이 바로 외로움 그것이 제일 힘든 것이 아닌가.


매일 눈을 뜨면 변변치 않은 반찬이나 빵으로 아침을 때운다. 아침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구수한 된장국이나 귀차니즘이 발동할 때면 세수도 안한채 떡진 머리를 감추고자 모자를 풀 눌러쓰고 바로 집 앞에 김밥천국이나, 편의점을 가거나, 아니면 해장국 집 생각이 나는 외로움,


운전을 하며 학교를 갈 때 쭉 뻗은 길 양옆으로 높게 뻗은 나무들이 늘어선 사이 길을 지나며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영어 표지판을 보면서, 빵빵대기도 하고, 길이 막히기도 하지만, 굳이 열심히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눈에 들어오는 교통표지판과 그곳에 mile 대신 쓰인 km에 대한 외로움,


학교에 도착해 아메리카노 텀블러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며 가끔 만나는 동료 교수나 스탭에게 "Hi"나 "How are you?" 정도의 안부를 전하면서 , 한국에서 아침에 출근해 동료 교수님과 함께 맥심 믹스커피를 무심히 입으로 물어뜯고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나머지 믹스커피 부분으로 휙휙 저으며 "이거 이렇게 하면 환경호르몬 먹는 걸 텐데 껄껄.." 하며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수다를 떨던 것에 대한 외로움,


수업 준비하면서, news.google.com에 들어가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 신문 비즈니스 섹션에서 오늘은 어떠한 기사로 수업을 시작해볼까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 나의 모습에, 한국에서 한국 신문을 재빠르게 휙휙 넘기며 '아! 이 기사가 좋겠군'하며 능숙하게 찾던 내 모습에 대한 외로움,


수업 준비가 끝나고 잠시 틈을 이용해 Facebook에 들어가니, 시차 때문에 저녁시간을 맞이한 한국에서 친구들이 올리는 다양한 저녁식사 메뉴 자랑 글에 아침에 먹은 변변치 않은 반찬의 아침이나 빵 한 조각으로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으며 느끼는 외로움,


포스팅을 스크롤하다 보니, 어제 모임을 했다면서 어느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사진 한 장에,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자는 듯 고기 냄새와 담배냄새가 배인 그 고깃집과 지독한 직장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것에 대한 외로움,


남겨 두고 온 가족이 주말 간 풍경 좋은 곳에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한다며 올려놓은 사진 아래 쓰인 왠지 모를 미안함이 담긴 글을 보면서 나 때문에 오히려 미안해하는 가족을 또 미안해하는 것에 대한 외로움,


수업시간 나와는 다른 문화를 살아간 젊은 미국 친구들의 낯선 이름들과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대학생활 이야기를 해줘도 선배가 없다며 나의 모든 것이 궁금한 것처럼 호기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던 나의 스무 살 시절과 같은 학생들에 대한 외로움,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내가 전화번호가 있기나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전화기를 바라볼 때면,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짜증 내면서 받았던 스팸전화나, 가끔 오는 친구들의 안부 목소리, 그리고 카톡 메시지들에 대한 외로움,


집으로 돌아와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보며, '아 이제 한국 장이 떨어졌군' 다음 주 즈음에는 3시간을 운전해서 Hmart에서 장을 봐야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집 앞에 경쟁하듯 마주 보고 있었던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서 팔고 있던 한국 음식에 대한 외로움,


등등,


그 일본에 계신 교수님께서도 오랜 시간 일본에서 생활을 하셨지만 그 짧은 글에서도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드러났고, 나 역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이곳의 장점도 있지만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그것으로 기인한 외로움이 제일 힘든 점 인 것 같다. 마치 그 복잡한 사회에서 정말 열심히 나의 톱니바퀴를 굴리면서 살다가, 내가 없는데도 그렇게 잘 굴러가는 사회에 대한 외로움이 제일 큰 것이 아닐까.


어느새 그 사회에서 사라져 버린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오늘은 오랜만에 한동안 죽어 있던 동기들의 카톡방에 안부인사 하나 남겨야겠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57 [강박의 2 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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