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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May 01. 2021

파도를 서핑하는 당신이 부러워요

튜브를 타고 떠내려간 사람

서퍼(Surfer)를 동경하는 튜버(Tuber)


이를테면, 이렇게 비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티비 속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속살이 투명한 바다를 떠올려본다. 기분 좋게 따가운 햇살이 바다 위로 내리쬔다. 해변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다 위에 튜브를 낀 채로 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팔다리는 힘을 빼고 편히 늘어져있다. 마치 한 마리의 해파리처럼 잔잔한 물결에 따라 둥실둥실 흔들린다. 튜브는 적당히 튼튼하고, 얼추 내 몸에 맞다. 조금 더 크고 편한 튜브도 좋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튜브에 몸을 맡기고 햇살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멀리서 높은 파도가 밀려온다. 그 위에 한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은 서핑보드와 한 몸이 된 채로 유려하게 파도의 흐름을 타고 있다. 부서지는 햇빛과 함께 그 사람이 빛난다. 저 사람이 빛나는 이유는 끊임없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단단한 바닥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멋들어지게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의 균형감은 눈부시다. 눈을 뗄 수 없는 반짝거림에 시선을 빼앗긴다. 


파도가 밀려와 어느새 튜브를 해변가로 데려다 놓아버린다. 해변가에 던져지면서 나는 튜브와 분리된다. 그렇게 나는 비장한 결심도 확고한 목표도 없이 회사를 나왔다. 튜브는 바다로 떠내려갔고,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내겐 오리발조차도 없다. 


저 멀리서 파도를 능숙하게 타고 있는 서퍼(Surfer)가 더욱 반짝인다.




요즘 관심사가 어떻게 되세요?


회사 안에서 바깥을 꿈꾸기 시작하던 시절 책 한 권을 우연히 만났다. 에밀리 와프닉이 쓴 <모든 것이 되는 법(How to be everything)>이라는 책이었다. 많은 관심사와 분야를 넘나드는 다능인(Multi-potentialite)이라는 개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우물을 깊게 팔 자신도, 흥미도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하지만, 나에게 취향이나 관심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면서 허둥지둥 관심사부터 찾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을 진지하게 탐색할 기회를 놓치고 살아왔던 나는 그것조차도 버거웠다. 남들은 회사 다니면서도 다른 우물을 파고 있었고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회사에 다녀서 힘들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수십 개의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심했던 지난 세월과 부정적인 버릇으로 인해 언제나 늘어난 고무줄처럼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프로 다능인이 가장 부럽다. 프로 다능인은 단순한 다능인과는 다르다. 관심사가 많다는 것을 넘어서, 그것들을 자신만의 일로 발전시키고 스스로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책과 유튜브에서 만나볼 수 있는 프로 다능인들이 나에겐 능숙한 서퍼처럼 보였다. 다재다능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킬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땅한 것이 없는 나의 빈 손을 바라보고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그 순간마다 두려움의 목소리가 찾아왔다.


“내가 뭐라고.”

“관심만 있지 재능은 없잖아.”

“이번에도 하는 척만 했네.”


‘부럽다’는 말이 나올 때는 보통 체념하는 마음일 때가 많았다. 


나와는 아예 다른 차원에서 사는 사람을 보고는 부럽다는 혼잣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주변의 사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어낸 상태일 때 뱉어지는 말이다. 왠지 쉽게 닿을 수 있어 보이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건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자신을 깨닫는 체념이다. 




가진 것이 없으면 일단 지금, 여기서 시작하면 된다. 


퇴사 후, 잠시 유예한 시간 안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선 조급한 마음에 더 이상 지지 않기 위해, 루틴을 만들고 단단한 내면을 쌓기로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시도해보기로 한다. 결국, 지금 하는 일들은 결국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으로써 수렴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만 할 뿐 실천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멋져 보이는 서퍼의 온라인 강의를 신청했다. 그동안 서퍼(Surfer)가 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다. “튜브 없이는 살 수 없을 거야.”라는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용기를 내본다. 그렇게 오늘도 일단 읽고 쓴다. 오리발이라도 끼고 헤엄을 쳐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멋들어지게 서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단의 이미지 크레딧 - "Anton Watman/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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