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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Jul 22. 2021

나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

나와 올바른 관계 맺기


“제가 심리상담을 받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지난봄, 모임이 끝나고 준비해두었던 질문을 A분께 조심스럽게 꺼냈다. 머릿속은 말을 걸기 전부터 밀려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하지 마, 몸부터 움직여'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친다. 


그 순간, 스스로에게 말을 걸 수 있기까지에는 수천 번의 주문 같은 혼잣말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 내 머릿속의 목소리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아는 나에게 저주였고 언제나 시끄러운 방해꾼이었다. 의심 가득 찬 목소리, 날카로운 가시를 품은 목소리, 우울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목소리, 기쁨을 믿지 않은 의심의 목소리. 꼬여버린 실태라 같은 나와의 관계에 더 이상 고통받을 수는 없었다.


퇴사 후 가장 시급한 건 '나와 화해하기'였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계를 재정립하고 싶었다. 

심리학, 철학, 인문학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나'를 규정하는 언어와 개념을 찾는다면, 나와 적당한 거리에서 건강한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단했고, 언제나 끝에서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라는 말에 도착했다. 마치 미로 속에서 헤매다가, 처음 출발한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출발점에서 주저앉아 다시 생각했다. 나에겐 조언자, 코치, 응원이 필요하다고.




방황하는 자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J. R. R 톨킨


불현듯 A분에게 조언을 구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A분이 임상심리 상담사로 일하고 계시기도 했지만, 그분의 친절함과 밝은 에너지에 기댄다면 질문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설픈 질문에도 A분은 친절하게 답과 조언을 해주셨다. 짧은 대화를 나눈 후 한 곳을 추천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다면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날의 작은 실천을 할 수 있어서 뿌듯한 기분은 덤이었다.


그날은 내 안의 소란과 마주하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한 날이었다.





며칠 후에 상담을 예약하려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이 이어지는 짧은 순간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몸이 굳어졌다. 단순한 전화 공포증인지, 본격적인 시작을 앞둔 떨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감추고 싶은 내 안의 모습을 꺼낸다는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전화가 연결되고 긴장된 목소리로 상담을 받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어떤 이유로 상담을 받는지 물어보는 간단한 질문이 되돌아왔다. 망설이는 나에게 직원분은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셔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역시 이런 전화는 무슨 말을 할지 준비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문득 책에서 본 ‘사회적 불안’이라는 단어를 꺼내 어설프게 설명했다. 상담사 선생님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오후에 다시 전화 주신다는 말과 함께 첫 번째 전화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점심시간을 지나 다시 받은 전화에서 수요일 일정을 전달받았다. 어차피 시간이 남아도는 퇴사원이었지만,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마음에 들었다. 당장 수요일은 내일이었고 다가올 낯선 상황에 긴장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새로 출발하자는 의욕에 설레는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와 바로 마주해 악수를 나눌 수 있을 미래를 그려보았다.



*상단의 그림 출처 -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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