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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Jul 29. 2021

친애하는 나의 우울에게

나를 향한 고백

저는... 제 우울을 좋아해요


지난가을, 설익은 고백을 말해버렸다. '우울' 좋아한다니,  내가 유명 아티스트나 작가도 아니고 무슨 용기였는지  수가 없었다. 고백은 '자아도취의 기분' 틈타 은근하게 새어 나온다. 말하면서도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힘겹게 입을 떼는 순간처럼  어딘가가 오그라드는 것만 같은 기분


이런 말을 할 때는 그다음이 중요하지만, 나에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봤자 마스크에 가려질 뿐이었다. 결국 어떻게 됐든 그럴듯한 말로 엉성하게 마무리지었던 고백이었다시야에  명뿐이라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이었다. 모임에는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이나 있었으니까. 어쩌면  말은 방백에 가까운 것이었을지 모른다.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모두가 듣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진심에 가까운 말을 하고 살자는 숙제를 하나 마친 개운함과 비슷했다


마음이 하는 말을 말했던 밤이었다.


마음이 열리는 하루 틈


우울보다 우울한 기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우울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빠져들어 느낄 수 없는 상태와 가깝다. 한편, 우울한 기분은 마음이 한껏 열리는 느낌과 비슷하다.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기분을 드러내는 일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 마음은 구겨져 있어서, 다른 사람 앞에서 말간 얼굴로 부려놓을 수 없었다. 기분 좋으면 해사하게 웃어버리고, 즐거우면 춤을 추면 될 일인데, 스스로를 허락하지 않았다. 감정과 기분이 밖으로 드러난 순간, 맨얼굴을 드러내고 발가벗은 사람처럼 어찌할 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고 믿을 자신이 없었다. 오로지 나만의 안전한 공간 안에서만 마음을 해방한 채로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결국, 그날 밤의 고백은 마음이 열리는 순간들을 사랑한다는 빗나간 고백이었다.


우울감은 대개는 하루 틈에 내 방문을 두드린다. 친애하는 나의 우울을 다정한 마음으로 환영한다. 내 텅 빈 방 안에 우울감의 안온한 온기가 퍼져나간다. 우울감에 몸을 맡기면, 세상의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유튜브에서 듣는 음악을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고, 시의 행간 사이의 속삭임을 읽을 수 있었다. 우울감 안에서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분리된 채,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겨났다. 언제나 화해할 수 없던 나조차도 용서할 수 있었다.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 비밀의 시간이다.


긴긴밤을 건너


창틈에 샛별이 뜨고 잠이 찾아온다. 우울은 어두운 낮을 맞아 다시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새하얀 밤을 보내고 마음은 닫힌다. 이제부터 긴긴밤은 어두운 낮을 밝히려는 준비의 시간이다. 오늘도 서투른 마음을 부려놓는 연습을 한다. 


당신 앞에서 나는 기꺼이 맨얼굴이 되어, 

좋으면 좋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마음이 하는 말을 하려 한다.

고백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상단의 그림 출처 - "마크 로스코, <Blue and grey>,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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