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 앞에서 고백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내가 껍데기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날이었다고. 4년 전의 지하철역에서 홀로 앉아 괴로워하던 그 날을 떠올리며.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따라 하고 있었다.
가짜 삶을 살면서 점점 무의미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건 아니야'라는 목소리의 부피는 점점 커져갔고,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외면했던 진짜 자아가 참을 만큼 참았다는 투로 나에게 외쳤다. 결국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깊은 허무함에 빠져들었다. 허우적거리던 내가 무의식적으로 잡은 건 책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최후의 목소리에 응답한 건지 지금도 분명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지막 발버둥 끝에 우연히 잡힌 동아줄 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삶에 정답은 없고 책은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소설책에 마음이 이끌렸다. 내 생각과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는 문장을 만나고 싶었다. 나의 내면에는 세상을 이해할 나만의 단어가 없었다. 예리하고 섬세하게 삶의 비밀이나 단면을 적어낸 문장들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세상과 닿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문장을 읽어내거나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은 그저 읽는 시간을 즐겼고, 어느 날은 질문을 품고 책을 찾았다. 책의 세계는 내가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고민을 탐구하는 곳이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얻는 데 실패하는 세계. 하지만 그 실패는 비교적 안전했다. 책을 펼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어떤 물건을 발견하는 것처럼, 만들어진 답을 찾는 여정이 아니었다.
책을 덮고 난 뒤의 종착지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만의 답을 내리기 위한 수많은 실패들을 쌓아가야 한다.
그렇게 책은 나에게서 떠나 나에게로 돌아오는 실패를 위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