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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Aug 12. 2022

아이스 라떼와 우유 그리고 배 아픔

제가 이렇게 생각이 많습니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쓰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들춰본다. 여행기, 직업 에세이, 힙하고 잔망스러운 일상, 삶의 중요한 순간 등 반짝거리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주눅이 들고 아무리 기다려도 첫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뭐라도 그냥 쓰자는 마음으로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상과 대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그렇게 아이스 라떼를 고르고 일단 써본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생각보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 라떼와 아메리카노


'그동안 나는 아메리카노와 라떼 중 어느 걸 더 많이 마셨을까?'


문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궁금해졌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커피 역사에서 두 음료의 카운트는 엇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커피라는 음료가 본격적으로 일상에 스며드는 데에는 라떼가 큰 역할을 했다. 그 당시 나의 커피 세계에는 콜드브루, 싱글 오리진, 핸드드립 등의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고,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떼라는 메뉴의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위치한 음료만이 전부였다. 그중 맹물에 가깝거나 탄 맛이 날 수도 있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페 라떼를 고르는 편이었다. 


찬 바람 부는 계절엔 따뜻한 라떼를 마셨고, 그 밖의 계절엔 아이스 라떼를 마셨고 가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순수한 커피 맛을 맛보았다. 물론 언젠가 스타벅스에서 산처럼 쌓인 얼음에 한 줌의 에스프레소 한 샷을 넣고, 물을 한 바가지를 붓는 장면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어느 날 차가운 우유를 마시면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고, 아이스 라떼는 아메리카노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었다. 라떼만 마시던 사람은 어느새 '얼죽아'가 되었고 핸드드립, 콜드브루, 캡슐커피를 넘어서 차에 관심을 가지면서 취향의 영역은 넓어졌다.


2. 라떼가 이런 맛이었나요


바람결이 옆구리를 서늘케 하는 가을이었지만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다. 공연장 아래에 자리 잡은 'ㅌ' 카페는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나 싱글 오리진을 마신다면,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늘어진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대신 간식거리와 아이스 카페 라떼를 들고 공연장 앞 벤치에 앉아 작은 피크닉을 준비했다. 라떼에 꽂혀있는 빨대로 밑바닥까지 정성스럽게 휘적거렸다. 


맑고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 라떼는 눈을 커지게 했다. '내가 알던 라떼 맛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미식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처럼 속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보니 그 맛에 놀라서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우유와 섞인 커피는 투명한 가을빛을 받아 보드라운 캐러멜 빛을 띠고 있었다. 놀라운 마음의 여운이 남은 채,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혀끝으로 라떼를 한껏 맛보았다.


밖에서 먹는 라면 맛처럼 입맛을 살리는 풍경과 시간 덕인지, 좋은 원두와 알맞게 섞인 우유가 만들어낸 조화 덕인지, 바리스타의 솜씨 좋은 손맛이었는지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아직 그날의 라떼는 부동의 내 인생 라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전보다 라떼를 자주 먹지 않게 된 지금, 그날의 라떼만큼 맛있는 라떼를 마시게 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3. 아이스 라떼와 배 아픔


의심할 수 있는 건 우유뿐이었다. 그날은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집과 회사가 멀던 나는 늘 이른 출근을 했고, 좁아터진 화장실은 다행히도 만석이 되기 전이었다. 아침에 화장실을 가는 루틴이 없던 나에게 출근길의 배 아픔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었다. 출근길 화장실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였다. 그렇게 변기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의심을 시작했다. 얼마 후 얼마 없는 용의자 중 차갑고 흰 우유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할 수 있었다.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마실 것 하나와 과일 또는 전날의 간식거리를 챙겨주셨다. 주로 우유에 미숫가루를 타서 주셨는데, 미숫가루가 다 떨어진 날에는 흰 우유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반쯤 뜬 눈으로 마신 흰 우유는 정신을 깨울 만큼 차가웠고, 바나나를 먹기 전의 빈 속을 채워주었다. 평생 우유 때문에 배가 아파본 적 없었지만, 아무리 궁리해봐도 멀쩡한 내 속을 아프게 할만한 건 우유밖에 없었다. 결국 우유를 잠재적 범인으로 확신하고 난 후, 아침 요깃거리에서 흰 우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출근길에 배가 아프지 않게 되었다. 결국 유력 용의자였던 우유는 아이스 라떼를 마시고 살살 아파지는 배로 인해 검거되었다. 내 위장은 뜨거운 라떼에는 반응하지 않았고, 결국 여러 번의 실험과 관찰로 내 몸은 차가운 우유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물론 내 속은 우유를 탄 미숫가루를 먹어도 멀쩡하고, 우유가 들어간 죠리퐁 쉐이크나 시리얼을 부어 먹는 우유에도 아무렇지 않게 잠잠하다. 아침에 먹는 차가운 흰 우유에만 반응하는건가? 싶다가도, 최근 얼마간 아침에 우유를 마셨는데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내 속이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단지 차갑고 흰 우유는 경계해야 하는 음식이 되었을 뿐이다. 물론 아이스 라떼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모르니까 말이다.




글을 쓰는 중에도 라떼를 중심으로 사사롭고 얄팍한 이야기들은 계속 떠오른다. '커피믹스 두 봉지와 우유'라던지 '라떼와 입 냄새'라던지 '라떼 친구들: 소이라떼와 바닐라 라떼'던지 말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나의 커피 이야기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금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시고, 라떼는 한때는 가깝게 지냈지만 멀어진 친구가 되어버렸다. 커피맛을 조금 알게 되었지만, 커피 입맛이 고급은 아닌 그런 내가 또 쓰게 될 커피 이야기는 아마 커피머신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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