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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Sep 09. 2022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몇 년 전이었을까, 연말 모임이 있어 여의도 길거리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현장 인터뷰를 따러온 K방송국 기자를 만나게됐다. 방송국에서는 연말을 맞아 ‘청년’ 관련 주제로 인터뷰를 구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은 간단했다. ‘요즘 청년들이 취업, 연애, 결혼 등을 포기하는 5포, 6포를 넘어 N포 세대로 가고 있다는데 어떤걸 포기하고 계신가요?’



그러게.. 나는 무엇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 갖지 못한 것들을 욕심내며 회사에서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일에 집중하고, 퇴근하고 나서도 공부하고 강의를 듣는데 시간을 쏟았다.


나는 기자에게 답변했다.


"저는 아직 포기한 건 없습니다. 그나마 '내 집 마련'이 현실에서 가장 멀어보이네요."


기자가 취업, 연애, 결혼 중에 포기한 것은 없는지 다시 물었다. 아마도 내 답변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기자는 아마도 사전에 예상하는 답변이 있는 듯 했다. 마치 내가 무엇인가 포기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다시 나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방송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런 프레임이 싫었다. 사람들이 희망도 없이 포기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같다는 패배감 속에서 삶의 요소들을 하나씩 놓고 있다는 그런 패색 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전염성 높은 패배감이 나에게도 물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방송국 사람들은 좋은 먹잇감을 찾아 노량진 학원가로 향했다.



무언가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그 날의 인터뷰 현장으로 돌아간다. 포기를 유혹하는 방송국 기자와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젊은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사람들이 지금의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 때만큼 패기있게 아무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꽤 많은 시간이 지나  내 주변에 많은게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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