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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Sep 14. 2022

정보 고물상

사람의 습관은 어렸을 때 만들어진다고 한다. 밥 먹을 때 젓가락을 쥐는 자세, 물을 마시는 자세, 달리는 자세 같은 것들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는 못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학교에서 받은 가정통신문은 모조리 학교 책상서랍에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학부모에게 전해져야할 문서까지 책상 속에 쑤셔넣어둔 덕분에 혼날 때도 종종 있었다. 반드시 가져와야하는 가정통신문을 두고와 모두가 퇴근할 시간에 다시 학교에 가서 가정통신문을 가져온 날들도 있었다.


최근 어머니랑 이야기하는 도중, 어릴적  '책상 서랍'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그런 습관도 사라지고 사람 구실하고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30이 넘은 이 나이에도 여전히 '책상 서랍에 쑤셔넣는' 습관은 남아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라는 배경과 책상 서랍이라는 공간만 사라졌을 뿐 아직도 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다가 어딘가에 쑤셔넣고 방치하고 있다. 회사에는 읽어야하는 기사 및 정보페이지가 웹브라우저에 수십 개 탭으로 남아있다. 시간날 때 한 번 읽고 정리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점점 더 쌓이고 있다. 스마트폰 속에도 언젠간 필요하겠지 하면서 지우지 않고 남겨둔 연락처와 어플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책꽂이에는 읽지 못한 책들이, 다시 보지 않는 사진첩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보니 나는 오래 전부터 '정보 소화 불량'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는 정보 고물상일지도 모른다.


컴퓨터 노트앱에는 써야할 글의 주제와 키워드만 적혀있는 노트가 즐비하다. 모두 발아 못한 씨앗으로 남아있는, 글이 될뻔한 것들이다.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에 두 개 정도 글쓰는 습관을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쌓아두는게 습관인 정보 고물상이다. 정보 소화불량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쌓여있는 씨앗들을 심고, 물을 주면서 가꾸는 방법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키보드 위에 손을 고정해둔다. 글쓰고 정리하는 것도 습관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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