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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Oct 08. 2022

KIA의 나비, 떠나다

https://youtu.be/uUozRm68K88

기아 나지완 선수의 은퇴식

대학교 시절 나는 사람들과 많은 교류가 없었지만, 왜인지 대학교 통기타 동아리에 몰입해있었다. 1학년 공강 시간 대부분을 대학교 후문 바깥, 냄새나는 허름한 지하 3층, 동아리 방에서 보냈다. 그 건물의 지하로 갈수록 공기 중에 흩어진 담배연기 속 타르와 벽에 낀 곰팡이, 그리고 수많은 젊음의 시간이 뒤섞여 휘발되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곳의 일부가 되어, 그 퀴퀴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거나, 잠을 자기도 했다. 2학기에는 아예 동아리의 본래 목적인 통기타를 잡고 있는 시간보다는 그곳에서 책을 보거나,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과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요즘 같이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 한국시리즈는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09년 SK와 기아의 한국시리즈 대결은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만큼 치열한 한국시리즈 우승 경쟁이었다. 저녁을 먹고도 집에 가지 않고 동아리방에 있던 어느 날. 인천 사는 동기와 같이 휴대폰 DMB로 대망의 7차전 경기를 봤다. 마지막 스코어마저 5:5로 치열한 9회 말 1사, 기아의 3번 타자 나지완이 나왔다.


야구를 자주 보지 않는 나는 그날 아주 우연히도 KBO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벌써 13년이 지난 그 시절,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동아리방과 거기서 보낸 시간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오늘 나지완 선수의 13년 전 그날을 재현한 은퇴식을 보고 냉동실 구석에 꽁꽁 얼어있던 무언가를 전자레인지에 해동시킨 것 마냥 서서히 녹아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나비’ 나지완 선수가 KBO의 역사를 만든 날, 같은 사건을 본 덕분에 나에겐 그날, 그 시간이 추억이 되어 생생하게 남아있다. 13년 전 그날 짜릿한 승부를 보여줘서,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시절 나를 떠올리게 해 줘서, 은퇴 후에도 ‘나지완 선수’는 나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야구 선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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