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소식을 알고 나서 해외여행을 갔다 오는 것을 여러 번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냥 임신도 아니고 쌍둥이다 보니 예측할 수 없는 변수도 많고 괜히 해외에 갔다가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를 생각해 보면 국내에 있는 게 아이들을 위해서도, 산모를 위해서도 안전한 선택이었다. 다만,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해외를 못 나가본 우리는 해외여행을 못 가본 게 한이었는지 분풀이로 국내여행이라도 많이 가려고 일정을 세웠다. 여기에도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아내가 임신 중반 이후에는 자동차를 오래 타는 것도 입덧이나 산모의 허리에 많은 무리를 주어 힘들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KTX를 타고 경주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경주는 내가 대학시절 군 입대 전 전국 유랑 배낭여행을 할 때 왔던 곳이다. 그때는 넘치는 에너지와 가벼운 지갑 덕분에 경주에서는 항상 걷고 자전거를 타면서 교통비를 아꼈던 기억이 있다. 외지인으로서 경주의 좋은 점은 10년 전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도시 인프라가 발전을 하고 골목골목 예쁜 카페와 숨겨진 맛집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천년이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적지는 그 모습 그대로다. 하고 싶은 것도 많던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내가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이런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경주를 찾았지만, 내 욕심이었을까, 아니면 목적지를 잘못 선택한 것이었을까? 분명 여름은 끝날 시기였지만 여전히 햇빛은 강하게 내리쬐고,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경주는 그늘 없는 유적지와 자주 오지 않는 버스로 인해 여름이 남기고 간 모든 것을 온전히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곧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나와 아내는 출산을 맞아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이미 세상 밖으로 나온 두 아이들을 안고 있겠지.
마지막 여행에서 우리는 정말 원 없이 걸었다. 차를 안 가져온 덕분에 많이 걸을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경주는 걸어야 하는 도시였다. 집에 가는 KTX 안에서 오늘 걸음 수를 보니 2만 보에 가깝게 걸었다. 만삭 산모에게는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이곳에 올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걷고 알차게 돌아다녔다. 이렇게 가볍게 둘이 훌쩍 KTX를 타고 떠날 수 있는 여행은 정말 마지막이었다. 아쉽고 섭섭한 느낌도 남지만, 언젠가 우리 네 가족이 같이 놀러 가면 얼마나 더 재밌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위안을 삼는다. 완전히 어둠으로 덮인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잠들었다. 뱃속 아이들도 오늘을 힘들었지만, 즐거운 하루로 느꼈기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히 잠들었기를, 기차 맞은편 좌석에서 오늘 하루 에너지를 다 쓰고 미소를 지으며 자고 있는 아이들과 같은 표정을 우리 아이들도 짓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