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것은 식물이 아니라 사람

이나가키 히데히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by ENA

식물에 관한 책은 많다. 세계사 속의 식물의 역할을 쓴 책도 꽤 된다. 금방 떠오르는 것으로 헬렌 & 윌리엄 바이넘의 《세상을 바꾼 경이로운 식물들》 같은 것이 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그에 다른 것들에 비하면 일본인이 쓴 것이라 아시아 쪽의 관점이 많이 들어가 있고, 또 우리나라 얘기도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나라에 관련된 것은 사실에 기초한 것도 있고, 저자가 추론한 것도 있어서 그게 꼭 정확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유도 있어서 흥미롭다(이를 테면 우리나라의 유별난 고추 사랑이 몽고의 고려 지배 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추론. 그때 우리나라가 육식 문화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사토 겐타로의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와 더불어 사람과나무사이라는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OO가지 OO”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와 같이 13가지 식물을 다룬다(시리즈라면 몇 가지도 맞출 법한데, 이 시리즈는 그걸 기계적으로 맞추지 않아 신선한 느낌이다). 감자,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가 그것이다. 각 식물들에 대해서도 분량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그것도 분량을 기계적으로 맞추지 않아 역시 신선하다.


각 식물에 대해서 인상 깊은 부분만 한 가지씩 소개하면,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유명한 감자의 유럽 재배와 관련해서(유럽에서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 악마의 식물’로 생각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가 감자를 보급하기 위해 귀족만 먹을 수 있다고 명령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재배하고 먹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략은 프랑스의 루이 16세도 썼고 역시 성공했다.


토마토 역시 안데스가 원산인데 콜럼버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갔지만 감자보다 더 오래 배척했다(빨간 색깔 때문?). 토마토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는, 이 토마토가 미국에서 재판에 회부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과일이냐, 채소냐 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당시 연방최고법원은 토마토가 디저트가 아니라는 이유로 채소라고 판결했다고 하는데, 식물학적으로 보면 과일이 맞다고 한다. 근데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저자도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 나라마다 달리 분류한다고 했다. 일본은 토마토뿐만 아니라 딸기나 멜론도 초본 속 식물이라 채소로 분류하는 데 반해, 한국은 방울토마토까지 포함해서 토마토를 과채류(果菜類)라고 한다고 쓰고 있다.


‘검은 욕망’ 후추에 관해서는 워낙 잘 알려진 것들이 많다. 대항해 시대를 연 요인 중 하나(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였으니. 처음 안 사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물론 그는 그걸 몰랐지만)에서 찾아낸 고추를 굳이 ‘페퍼(후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고추에 대해서는 앞에서 쓴 대로 한국인의 고추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 깊은데, 사실 고려 말의 몽골 지배 이후 육식 문화로 바뀌었고(정말 그랬나?), 그 때문에 고기를 오래 보관하고, 고기의 맛을 강화해주기 위해 고추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추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몽골 간섭과 한반도에 고추가 들어온 시기 사이에는 꽤 시차가 존재한다. 그냥 저자의 추측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양파가 잎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된 것이다(아마 전에 읽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기억에는 별로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짧게 소개된 식물이다.


두 개의 전쟁과 밀접한 관련 있는 게 차다. 미국 독립 전쟁과 아편 전쟁이 그것인데, 정말 세계사의 전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여기에서는 역사보다는 차를 마시는 문화 부분이 흥미로운데, 중국의 말차 문화(차를 가루로 빻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것)를 받아들인 일본은 지금도 그렇게 마시는데 비해, 중국은 송나라 이후 명나라에 이르러 차를 서민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 간단하게 찻잎으로 우려 마시도록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그런 문화이고.


사탕수수에는 흑인 노예의 피와 함께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이민자의 땀이 서려 있다. 이 사탕수수가 돈이 되어 널리 재배하게 된 데에는 차 문화와 관련이 있다. 홍차에 넣는 설탕 한 조각. 바로 그것이 수많은 노예의 비극을 낳게 하였다는 것이다.


목화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이유를 목화에서 찾는다. 목화는 남부의 돈줄이었다. 북군은 남부의 돈줄을 틀어막기 위해 항구를 봉쇄했는데, 남부도 자발적으로 목화 수출을 제한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목화를 수출하지 않으면 영국이 곤란해지는데, 그러면 영국이 자신들을 지원하리라 계산했던 것이다. 그런 의도를 알아챈 미국이 보편적인 목적인 노예해방을 들고나옴으로써 영국의 지원을 막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링컨의 의도에는 그것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저자는 여기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군데서 이렇게 명쾌하고 상황을 정리한다. 그게 시원시원해 보이기는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밀에 관해서는, 인류를 먹여 살리는 이 식물의 독특한 특징에 관심이 간다. 밀과 벼를 비롯한 볏과 식물은 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에 유리의 원료이기도 한 규소를 축적해서 자신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규소는 독 이상으로 초식동물을 물리치기도 하거니와 흙 속에 다량으로 녹아 있으면서도 다른 식물들은 이용하지 않으니 독점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 자체에 관해서는 탈립성(脫粒性)이라는 성질을 잃어버린 희귀한 돌연변이를 인간이 이용하게 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벼와 밀은 탄수화물을 주 영양원으로 삼는다. 단백질과 지질을 포기한 이유는, 그것들이 에너지 효율이 좋긴 하지만, 만드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부모 식물에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척박한 환경에서 진화한 볏과 식물은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광합성으로 얻은 탄수화물을 그대로 씨앗에 저장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혜택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벼는 영양 면에서 균형 잡힌 식품인데, 단 한 가지 라이신이라는 아미노산만 부족하다고 한다. 그걸 보충해주는 것이 바로 대두, 콩이다. 콩밥이나, 밥에 된장국. 이게 근거가 있는 조합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식물은 (의외로) 옥수수다(사람이 아니라 가축에 들어가는 양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가 밀과 벼이고, 그다음이 감자, 대두(콩)이라고 한다. 대두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나라는 (역시 의외로) 미국이다. 이 대두는 중국 4,000년 문명을 뒷받침한 식품 중 하나였고(특히 북부), 단백질과 지질이 풍부해서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옥수수. 옥수수는 정말 미스터리한 식물이다. 인용해 보면,

“벼와 밀 같은 볏과 식물은 대부분 하나의 꽃에 암술과 수술이 있는 양성화다. 그런데 옥수수는 줄기 끝에 수술이 피고 줄기 중간에 암꽃이 맺힌다. 특히 암꽃은 독특하게도 우리가 ‘옥수수수염’이라고 부르는 콘 실크(corn silk)를 생성하는데 여기에서 실처럼 늘어지는 물질이 대량 분비되는 이 옥수수수염으로 꽃가루를 받아 수정한다.”

“옥수수는 멀리 퍼뜨려야 할 씨앗을 껍질로 꽁꽁 싸매고 있는데 이래서는 씨앗을 퍼뜨릴 수가 없다. 더구나 껍질로 둘둘 말려 있던 노란 알갱이가 드러나도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씨앗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면 식물은 자손을 남길 수 없다. 쉽게 말해 옥수수는 마치 가축처럼 인간의 도움 없이는 자랄 수 없는 식물이다. (중략) 처음부터 누군가가 작물로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주는 식물이 바로 옥수수다.”


마지막이 튤립인데, 앞의 모든 식물이 인류가 식량으로 삼아온 것인데 반해, 이것만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포함시킨 이유는 다름 아닌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 튤립 버블 때문이다. 튤립의 명칭이 터번(turban)에서 왔다든가, 가장 비싸고 귀하게 쳤던 튤립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것이라든가 하는 것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가 감염된 식물의 경우 종자는 감염시키지 않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는 이어지지 않는데 반해 튤립의 경우는 알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알뿌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자손들도 감염된 채로 번식한다는 것은 처음 접한 것 같다(바이러스 감염 얘기를 하니 비록 식물이지만, 괜히 꺼려진다).


나는 이 식물들이 세계사를 ‘바꾸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사를 바꾼 것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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