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한다(발표는 1929년 <영국병리확회지>에). 바로 약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플레밍은 실제 약으로서의 효용성을 낮게 봤다는 얘기도 있다. 먼지 쌓인 잡지에서 논문을 찾아내 갖은 노력 끝에 순수 분리하고, 약으로 만들어낸 것은 플로리와 체인이었다(여기에 히틀리라는 독일 연구자도 포함시켜야 하지만, 노벨상은 이 셋에게만 주어졌다).
첫 항생제의 역사다. 하지만 사실은 플레밍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뒤셴이라는 프랑스 청년이 페니실린과 똑 같은 물질을 발견한 적이 있었고, 독일의 독마크는 설포닐아미드라는 염료에 기반한 항생제를 개발해서 플레밍, 플로리, 체인보다 먼저 노벨상에 지명되었다(나치의 반대로 실제로 받은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지만). 그리고 플레밍 등이 노벨상을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또 항생제 개발에 대한 공으로 미국의 왁스만이 노벨상을 받는다. 이번에는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결핵에 대한 항생제였다(이번에도 샤츠라는 실제 실험을 뼈빠지게 수행한 연구원은 노벨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만큼 항생제는 놀라운 약이었다(Miracle drug). 1950년대, 1960년대에는 항생제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1960년대에는 이제는 감염질환에 대한 책은 필요 없다고 선언할 만큼 세균에 대한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항생제의 발견, 혹은 개발과 더불어 비극의 씨앗은 뿌려지고 있었다. 항생제 사용의 필연적인 결과로 항생제 내성이 서서히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항생제 내성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게 1990년대, 2000년 들면서는 ‘만연’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었다. 하나의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 다른 항생제를 쓰면 되겠지만, 거의 모든, 아니 실질적으로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pan-drug resistance, PDR) 세균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균 감염에 쓸 약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세균, 나아가 진균(곰팡이 종류)을 슈퍼버그(superbug)라고 한다(역사적으로 반코마이신에 중등도 내성을 갖는 황색포도상구균, vancoycin-intermediate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즉 VISA를 일컫기 위해 미디어와 연구자가 부르기 시작한 명칭이다).
항생제가 쓸모 없어질지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맷 메카시의 《슈퍼버그》는 그 전후, 앞뒤의 얘기를 매우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여러가지다. 그 내용에 따라서 이 책은 항생제 개발에 관한 역사를 다룬 책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항생제에 대한 임상 시험에 대한 책이기 되기도 하고, 여러 환자의 삶에 다룬 르포 같은 책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훌륭한 의사에 대한 전기가 되기도 한다.
우선 이 책은 자신(저자는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다)이 진행하는 새로운 항생제에 대해 시판 후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과정과 애환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항생제는 달바반신(Dalvavancin)(책에서는, 그리고 의사들은 ‘달바’라고 줄여 부른다)이라는 것으로 2014년에 미국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았다. 주로 MRSA(methicillin-resistant S. aureus)에 의한 피부 감염을 치료하는 약으로 승인을 받았으며, 특히 짧은 기간 동안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 저자는 이 임상시험에 관현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IRB 심사를 받으며(여러 차례 보류와 수정 단계를 거친다), 환자를 선정하고, 설득하고(대부분은 거절당하며), 항생제를 투약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항생제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약이 실제 임상에 도입되기 위해서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여기에 보여지는 과정은 그 전체 과정에서도 매우 부분적이다. 가장 마지막 단계이니까 그 전의 과정에서 무수한 좌절과 실패를 통과해서 겨우겨우 다다른 단계이기도 하다).
또한 항생제 발견과 개발에 대한 책이기도 한데,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보르네오 섬의 토양에서 우연히 찾아낸 반코마이신을 만들어내는 세균, 헤이즌과 브라운이 샘플을 주고받으며 찾아낸 최초의 항진균제 니아스틴 등에 관한 얘기들이 소개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항생제를 대체할 다른 치료 방법, 즉 박테리오파지에서 유래한 리신을 이용한 방법, 유전자가위라 일컬어지는 크리스퍼를 이용한 방법도 소개된다. 항생제가 어떤 역사를 거쳐서 어디로 가려 하는지를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진료하고, 임상 시험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그것 자체로 안타까우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삶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하고, 그래서 감염 치료라는 게 단순히 세균을 없애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우선되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도 의사로서 잘못 하는 부분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뒤돌아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이 책이 공감과 위안을 주는 책이라는 것을 느낀다. 더욱이 의료 윤리, 연구 윤리에 대한 부분은, 사실은 반성이기도 하며, 다짐이기도 한데, 연구자나 의사들이 저질러온(나치 시대의 의사나 미국 터스키기에서 벌어진 매독감염 연구와 같이) 잘못만이 아니라 현재도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의료 윤리에 어긋나는 상황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책은 자신이 멘토로 따르고 있는 톰 월시라는 의사에 대한 전기이기도 하다(스스로 월시에 대한 전기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암과 감염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사로서, 특히 진균 감염에 대한 세계 최고 전문가로서, 그리고 대륙을 오가며(전화를 받고 20분만에 공항으로 떠나는 의사다) 무료로 조언을 해주는 의사로서 월시는 의사의 표상처럼 등장한다. 정말 월시라는 의사가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어쩌면 그런 표상을 설정하고 자신이 거기에 다다르고자 하는 이상으로 삼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항생제가 소용 없어지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에는 암에 의한 사망보다 항생제 내성에 의한 사망자 수가 많아진다는 예측도 나왔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잇지만) 항생제는 제약회사에 돈이 되지 않는다. 개발 기간도 오래 걸리고, 실패 확률도 높다. 또한 평생 써야 하는 고혈압이나 당뇨약과는 달리 그 감염을 치료하고 나면 끝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항생제 내성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약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래서 큰 제약회사들이 털기 시작한 게 벌써 오래되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으로서 제약회사만 나무랄 수는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기는 한다(이 책에서도 몇 가지 제시된다). 방안이 제시되기만 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실행되어야 하며, 거기에 의사, 환자, 일반인, 그리고 연구자 들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