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개전 한 달 무슨 일이 있었나?

-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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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2차 세계대전보다 제1차 세계대전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선과 악이 보다 명확했던 제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그 구분이 흐릿하기 때문이다(물론 이 책에서는 그 구분이 조금 명확하긴 하다). 어쩌면 너무 심심해서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전쟁. 누구는 사라예보의 총성이 불 붙였다고 하고, 누구는 제국주의의 다툼으로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전쟁. 서로 인맥으로 얽혀 있었음에도 막을 수 없어 ‘몽유병자들’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는 전쟁. 4년 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황폐화시켰던, 최초의 세계전쟁으로 이름이 붙은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전쟁.


하지만 전쟁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그 전쟁이 나중에 세계대전이라 불릴 건지, 아니 4년이나 끌게 되는 장기전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치인도, 장군들도, 지식인들도 19세기의 낭만에 기초해서 생각했을 뿐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주역. 독일은 최대 8주면 프랑스를 완전히 굴복시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프랑스도, 영국도 한 판의 승부로 결정 날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은 이 전쟁에 자신들이 얽혀 들어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의 바램 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1963년 퓰리쳐상 수상작인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은 바로 그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다. 그러나 다른 많은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들이 대개 전쟁이 어떤 배경을 두고 벌어졌는지에 중점을 두거나, 4년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이후 세계는 어떻게 재편되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 데 반해, 《8월의 포성》은 1914년 8월. 그 짧은 시간을 다룬다. 전쟁이 일어난 한 달 동안의 일이다. 물론 앞부분은 그 이전 시기의 일을 다루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들이 중요하게 언급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세르비아 등의 갈등은 싹 빼고(책 전체에서 이들 나라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독일의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상황을 다룰 뿐이다. 폭발을 야기한 도화선은 없는 듯이 바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전쟁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든 전쟁은 독일의 패권 도전 때문이었다는 것이 바로 1960년대 바바라 터크먼이라고 하는 미국 여성 역사 저술가의 생각이다(개인적으로 여기서 이 책이 쓰여진 시기, 쓴 이가 미국인이라는 점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일 외의 다른 열강들도 전쟁에 끌려 들어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억제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 전쟁은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독일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군사전략으로 넘어간다. 이 부분에서는 모두 과거의 성공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성공의 사례를 통해 정립된 것은 바꾸기 힘든 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게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중요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전략은 일부 성공과 많은 실패를 가져왔고, 전쟁은 그들의 바램 대로 단기간의 승부로 끝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저자가 이 8월 한 달 간만을 그려내고도 제1차 세계대전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한 달 간이 이후의 전쟁을 규정짓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의 또 다른 세계 전쟁까지도.

“(독일의) 슐리펜 계획의 실패만큼이나 (프랑스의) 플랜17의 실패도 치명적이었으며,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서부전선의 교착상태를 만들어냈다. (중략) 개전 첫 달의 실패로 인해 굳어진 교착상태는 전쟁의 향후 진로와 결과적으로 강화조약의 조건, 양 대전 사이의 사회상, 그리고 제2차 대전의 조건들을 결정짓는 데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벨기에 침공으로 전쟁은 발발한다. 벨기에는 열강이 아닌 국가로서 유일하게 이 책에서 크게 주목 받는 국가인데, 독일의 예상, 또는 기대와는 달리 벨기에의 알버트 국왕은 당연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 항전을 선언하고 장렬하게 패배한다(저자는 이 점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보고 있다). 덕분에 단 며칠이지만 연합국은 시간을 벌게 된다. 8월 한 달 간의 여러 전투들이 다뤄지는데, 궤벤 호를 둘러싼 쫓고 쫓김. 알자스를 둘러싼 일전. 영국 원정군의 출전(그러나 머뭇거림). 몽 전투(승리인지, 패배인지 애매한). 러시아의 참전(“코삭이 밀려온다!” 러시아군은 처음부터 패배했지만, 러시아의 참전으로 독일의 전선은 넓어지고 만다. 이런 독일의 실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반복된다).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의 명성을 드높이게 된 탄넨베르그 전투. 미국의 참전 명분을 세워준 것 중 상징 중의 하나인 독일의 루뱅 방화. 프랑스의 퇴각(이제 수도를 옮길 정도로). 그리고 마른 전투. 이 마른 전투로 전쟁은 일방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고, 장기전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숨가쁜 한 달 간의 상황을 바바라 터크먼은 정말 실감 나게 쫓아가고 있다. 전쟁 초기의 중심에 선 인물들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그들의 고민과 울분, 겁, 자신감 등등이 생생하다. 그들은 전쟁광(狂)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등장 인물들의 다채로움과 낯선 지명들이다. 저자는 21세기 태평양 건너에서 이 책을 읽을 독자의 수준은 별로 감안하지 않았다. 지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많은 정치인들과 장군들에 대해 한번만 설명하면 다 어느 쪽 인물인지 알아들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독일의 지휘부의 장면에서 갑자기 장면을 바꾸어 프랑스나 영국의 내각 얘기를 하곤 하는데, 아. 그때의 난감함이란. 그래서 사실은 더 꼼꼼하게 읽게 되는데, 거의 2/3쯤 가서야 익숙해졌다. 그런 장면 전환의 묘미까지.


전쟁에서는 단순히 숫자만으로는 절대 헤아려지지 않는 목숨들이 사라져간다. 이 책에서는 이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게 쓰고 있진 않다. 하지만 분명히 전쟁의 무서움만큼은 느낄 수 있다. 신나게 읽다가도 가끔씩 멈칫멈칫 멈출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것이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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