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준상의《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
우선 도준상 교수에 대해서.
의아한 것이 이 분의 전공이다. 공대 교수, 그것도 화학생명공학 이런 쪽도 아니고 재료공학이 전공이다. 재료공학과 교수가 면역학을?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의 글>을 보면 대충 이해가 된다. 박사후 연구원 시절의 교수가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앨리슨 교수의 제자이고, 박사 학위 과정 초반부터 면역학과 공학을 융합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니. 책의 마지막 단락에 다음과 같은 쓰고 있는데, “지금까지 면역항암 치료 분야 발달에 생명과학과 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공학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을 기대한다.” 자신 전공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면역항암제에 대해.
나의 면역학 지식은 최근까지만 해도 199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다. 면역학이란 자기(self)-비자기(nonself)의 구분에 관한 학문, 그 정도였다. 그러니 암세포를 면역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눈부시게 발달해온 면역학에는 깜깜했던 셈이다. 그런 보잘 것 없는 면역학 지식(또는 면역학의 발달에 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늘리게 된 것은 대니얼 데이비스의 《나만의 유전자》과 《뷰티풀 큐어》가 역할을 했다. 그리고 면역항암제에 대한 것은 이 책과 같은 출판사(바이오스펙테이터)에서 나온 남궁석의 《암정복 연대기》를 통해서였다(《뷰티풀 큐어》도 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암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 주로 T세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이 T세포를 많이 만들어내거나, T 세포를 억제하는 세포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하는 게 면역항암제다. 오랜 시간 동안 암흑기를 거친 이 방법은 2010년대에 이르러 여보이라는 약이 나오면서 갑자기 대세가 되었고, 급기야 2018년 면역항암제, 그 중에서도 면역관문역제 개발에 선구적으로 나섰던 제임스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가 노벨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바로 그 면역항암제에 대한 해설서다.
책의 수준에 대해.
그런데 어렵다. 책 제목은 분명 “최소한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 최소한의 것이 너무 많고 깊다. 남궁석의 《암정복 연대기》에서 세 가지 새로운 항암제에 대해 쓰면서 한 가지가 이 면역항암제였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대학 교양 생물학 수준의 책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수준을 뛰어넘는다. 아마 대학원 수준은 되어야, 그것도 그쪽 전공 비스무리한 것은 해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핵심과 관심이 가는 분야 정도만 가져가더라도 충분이 의미 있는 책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것”은 아니다.
내용에 대해.
사실 책의 수준 자체는 별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이 정도의 책도 나와야 한다. 아마 바이오스펙테이터라는 출판사는 (나오고 있는 책들을 보면) 상당한 수준의 과학 교양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준을 높여주는 것도 국내 과학 교양 서적의 다양화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좀 너무 딱딱하다. 이 책이 전공 서적이 아니라 교양 서적이라고 이해하는데,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비슷비슷한 세포와 분자 이름들이 열거되고, 그것들이 이렇게 반응하고, 이렇게 억제하고, 그래서 이런 현상이 나오기도 하고, 저런 현상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약을 어떤 암에 썼더니 이랬고, 다른 약은 저랬다. 이렇게 이어진다. 마치 전공 서적, 아니 전문 저널의 긴 리뷰를 읽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연구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땀이든, 그들의 삶이든, 그들의 싸움이든 그런 것들이 있다면 좀 쉬면서 분자 이름들을 따라갈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이 책은 암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와 그래도 쉽지 않다는 현실을 깨우치게 한다. 연구자들은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