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책을 읽다

강병융의 『도시를 걷는 문장들』

by ENA

어떤 목록에서 눈에 확 띄는 책, 유럽의 도시, 그리고 책. 이 책이었다. 나도 여행에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동지를 만나는 느낌.


22개의 도시(페루의 리마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의 도시)에 책 한 권씩. 오스트리아 비엔나,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마드리드 같은 익숙한 이름의 도시도 있지만, 슬로베니아 프투이, 폴란드 포즈난, 크로아티아 플리드비체,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몰타 발레타, 라트비아 리가 같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도시도 있다(익숙한 도시는 익숙한 대로, 낯선 도시는 낯선 대로 모두 그곳의 존재 이유가 있고, 여행의 가치가 있다). 그는 그 도시에 어울리는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강병융은 도시와 책을 그냥 나름대로 연결시키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거기서 읽은 책(그는 도시를 여행, 혹은 방문할 때마다 책 한 권(씩만) 들고 떠난다)을 소개할 따름이다. 책은 어디서나 그 도시와 잘 어울린다. 그 분위기와 맞으면 맞는 대로, 맞지 않으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유럽의 도시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은 여유를 갖는 일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한 곳에 멈추어야 하니까.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건물과 길,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본다. 그리고 다시 책의 문장을 음미한다. 도시의 냄새를 맡는다. 몰려다니며 사람 많은 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여행인 셈이다. 책읽기도 일종의 여행인데, 그렇다면 이건 이중의 여행이다. 이 겹쳐 경험하는 여행은 서로의 인상을 증폭시킨다.


내 독서 취향과는 별로 겹치지 않는 강병융을 글을 읽으며(내가 읽은 책이 드물다. 전혀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 익숙한 데를 거듭 가는 것이라면 그 설레임이 덜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포르투갈 리스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런 데를 가보고 싶어졌지만, 아마 그곳에서 펴들 책은 그가 고른 책은 아닐 것이다. 그가 고른 책 중 몇 권은 이곳 대한민국에서 소화될 지 모르고, 내가 가보게 될 어느 도시에서는 나만의 책이 그 도시와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증폭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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