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의 『1947 현재의 탄생』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과 닮았다. 모두 한 해 동안의 유럽의 풍경을 1월, 2월, … 12월로 나눠 쓰는 형식이 똑같다. 하지만 다르다. 『1913년 세기의 여름』이 1차 세계대전 전야라면, 『1947 현재의 탄생』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1913년 세기의 여름』이 나른하다면, 『1947 현재의 탄생』은 쓸쓸하다. 전쟁 전과 전쟁 후의 느낌은 얼마나 다른가? 릴케와 에곤 실레가 『1913년 세기의 여름』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1947 현재의 탄생』을 대표하는 작가는 조지 오웰이다.
이안 부루마의 『0년』이라는 책도 있다. 이안 부루마의 0년은 1945년이다. 그는 1945년을 현대의 탄생 시점으로 보고 그 한 해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완전히 혼란스러운 한 해였다. 그러나 스웨덴인이자 유대인인 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는 현재가 탄생된 해를 1947년으로 잡고 있다. 왜 1947년일까? 우리는 1945년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 2년 후에야 비로소 전쟁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본다. 그 해를 보아야 현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렘킨이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을 공식화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배를 타고, 유엔위원회를 결정을 해야만 해야 했던 해가 1947년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의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 출간을 준비하고, 조이 오웰은 주라섬에 틀어박혀 『1984』를 다 써낸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미국의 작가 넬슨 올그런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프랑스로 돌아와선 그리움에 사무치면서 『제2의 성』을 쓴다. 미국에선 CIA가 창설되고, 소련을 중심으로 코민포름이 결성된다. 미국에서 메카시즘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소련에서 칼라시니코프, 즉 AK-47(여기의 47이 바로 1947년을 의미한다)가 완성된다. 그리고 1947년은 디오르란 브랜드와 H&M의 전신인 회사가 처음으로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충격적인 것은 나치주의자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영국에서, 스웨덴에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임을 만들고, 잡지를 만들고, 책을 쓰며 나치즘을 옹호하고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확산시키려 한다. 그리고 나치를 아르헨티나로 탈출시킨다. 지금의 극우주의가 그 후예다. 유대인들은 게릴라 단체를 결성하고는 영국인 가지를 억류하고 죽인다. 그들도 아랍인도 물러섬이 없다. 이집트 시계공의 아들 하산 알-반나는 무슬림형제단을 결성하고 지하드를 선언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은 인도대륙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갈등이 폭발하고 폭력 사태 끝에 드디어는 갈라선다. 간디의 호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현재를 알자면 과거를 볼 수 밖에 없다.
1947년. 먼 과거 같지만, 그리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