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생물 이야기, 또는 과학에 관한 이야기

김우재의 『선택된 자연』

by ENA

그가 가지고 있는 불만은 그가 전공한 초파리에 지원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너무 가볍게,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같지만, 그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이어지는 논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왜 초파리에 대한 연구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었는가? 그건 연구의 중심이 사람에게, 그것도 의학적 연구에 집중되면서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 생물이 얼마나 사람과 비슷한가로 생물 연구의 가치를 정하고 연구비가 지원되는 상황 때문이다. 이것은 전작 『플라이 룸』에서 줄기차게 얘기했고, 여기서도 틈만 나면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되었는가? 연구비의 대부분이 생쥐에게 집중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쥐도 문제가 있다. 생쥐에서 연구한 것을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껏 사람과 가장 비슷하다고 해서 연구했는데 여전히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다면, 더 (훨씬) 비싼 연구비를 들여 한 연구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생쥐를 쓴 연구가 가장 대접받고 있고, 초파리를 이용한 연구는 찬밥이다(그런데 다른 생물을 이용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도 똑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생쥐를 가지고 연구하는 이들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데 초파리만이 아니다. 이른바 모델 생물이라는 것이 있다. 김우재가 ‘선택된 자연’이라고 이름 한 것. 보편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선택한 생물이 바로 모델 생물이다. 생쥐나 초파리 말고도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보자면, 애기장대라는 식물이 있고, 일반적으로 C. elegans라고 하는 예쁜꼬마선충이 있고, 제브라피시라고 하는 물고기가 있고, 대장균(E. coli)이라고 하는 세균이 있고, 효모라고 하는 곰팡이 종류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 생물들을 이용해서 정말 눈부신 성과를 내왔다. 그 성과는 고스란히 인류의 자산이 되었다.


그 밖에도 많다. 초기 분자생물학의 역사를 만든 박테리오파지도 있고, 신경생물학의 놀라운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게 한 군소라는 바다달팽이도 있다. 1유전자 1효소설을 가능케 한 붉은빵곰팡이가 있고, 각종 세포주들도 있다.


김우재는 이러한 모델 생물들의 역사와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가 더욱 강조하는 것은 그것들이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중요하고, 뭐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것만이라면 이 책은 과학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학생들을 위한 교양과학서적이겠지만, 이 책은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과학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과학의 미래, 과학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 등에 대해서 진중한 발언이다(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명백히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그 소재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게 아니더라도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위한 책이 아니라 적어도 과학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위한 책이다).


그의 견해 모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학에 대해서 이렇게 고민하는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연구비 때문에 고민하지, 연구비의 배분 구조에 대해서 분석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과를 이용해서 논문을 어떻게 잘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자신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에 대해서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논문에서 연구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의 견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의 고민과 주장은 그것 자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각 장마다 설명과 논의의 방식과 수준이 매우 차이가 난다는 점은 좀 이 책의 완결성을 막는다. 어떤 장은 과학이지만, 어떤 장은 발언이다. 그래서 읽다 조금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것도 과학에 대한 관심과 과학의 의미와 전개에 대한 관심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관성 때문일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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