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퍼니 엘리자베스 모어의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
프랑수아 쟈콥과 함께 대장균에서 유전자 조절 단위인 오페론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은 자크 모노는 “대장균에서 진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진실이다”라고 했다. 이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모델 생물의 중요성을 말한다. 모델 생물이란 생물의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실험에 기본적으로 이용되는 생물을 말한다. 이를테면 대장균(Escherichia coli), 생쥐,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제브라 피쉬, 애기장대, 그리고 초파리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생물학의 연구자들은 이런 생물들을 연구하고, 자신의 연구를 확장한다.
초파리를 본격적으로 연구에 이용한 것은 20세기 초 토마스 헌트 모건에 의해서였다. 그는 초파리에서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흰색 눈을 가진 초파리였다(원래 초파리의 눈 색깔은 붉은색이다). 곤충학자가 아니었던 그는 생물의 발생과 유전에 관심을 가졌고, 우연하게 초파리에서 기회를 발견했다(물론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기회를 알아차리지도 못했겠지만). 그리고 그는 돌연변이 초파리들을 이용해서 유전학의 기초를 세웠다(당연히 노벨상도 받았다). 그 이후로 초파리는 모델 동물로서 화려한 역사를 써오고 있다.
하버드대 의대에서 유전학을 가르친다는(이게 소개된 약력의 전부다. 이처럼 저자 약력이 짧은 책도 드물다) 스테퍼니 엘리자베스 모어가 쓴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는 바로 모델 동물로서 초파리가 써온 화려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초파리는 세대가 짧고, 개체수를 많이 확보할 수 있으며, 형질이 뚜렷하여 돌연변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크기가 작아 실험 공간도 별로 차지 않고, 키우는 것도 간단하기 때문에 모델 동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초파리에게 있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사람에게도 있기 때문에 생명 연구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인간에의 적용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게다가 초파리에서 100년 여 동안 축적된 연구 자료는 이 동물을 버릴 수 없게 한다. 이 책은 바로 초파리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을 바탕으로 그것들이 결국에는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람들은 초파리와 사람 사이의 간격이 매우 넓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초파리에서 어떤 것들을 밝혀냈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여길 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초파리에서 밝혀진 것들은 거의 대부분 사람에게도 적용되며, 사람에서 잘 밝힐 수 없는 것을 초파리로 우회해서 밝힌 후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사람의 신경학적 병리라고 할 수 있는 파킨슨병이라든가, 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대해서도 초파리를 통해서 연구를 한다. 그리고 인체의 방어 작용(면역 작용)을 이해하는 데도 초파리가 이용된다(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최근에는 동물 실험을 할 때 생쥐 대신에 초파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초파리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간격이 넓든 좁든 그 간격을 넘는 단계가 필요하고, 그 단계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바로 인간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쉬우며, 효율적이며, 또 윤리적인 문제도 거의 없기 때문에(모든 동물 실험 연구 계획서에는 실험에 사용한 생쥐를 편안하게 죽이는 계획을 포함시켜야 하지만, 초파리는 그렇지 않다. 초파리를 죽이는 데 어떤 윤리적인 갈등을 겪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초파리는 소중한 연구 재료인 것이다.
스테퍼니 엘리자베스 모어가 쓴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는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초파리에 대한 기본 텍스트로는 좋은 책이다. 초파리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이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