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플라이룸』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는 많은 글을 써왔다. 그를 의식하면서 그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왔다. 과학과 사회에 관한 그의 글들은 날이 서 있었고, 날이 선 까닭이 명확했다. 곡선 없는 직선, 직진만 하는 그의 글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많고, 큰 호응을 받기도 한다. 물론 과학과 사회라는 접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가 그리 많지 않기에, ‘큰’ 호응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데 함정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가 책을 냈다. 『플라이룸』. 플라이룸(fly room)이란 좁게는 (노랑)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를 모델 생물로 채택해 현대 유전학의 초석을 다진 토마스 헌트 모건의 실험실을 의미하고, 넓게는 초파리를 배양하는 방을 가리킨다. 이것을 제목으로 정했다는 것은, 그가 초파리 유전학자로서 발언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초파리 유전학자로서의 발언은 초파리나 유전학에 대한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과 관련된, 혹은 그것을 넘어선 사회에 대해서 발언한다. 그게 그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여기저기 쓴 글이 많은 상황에서 그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쉬운 길 대신에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얽은 책 한 권을 쓴 것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 똑같이 초파리 유전학에 대한 책인 스테퍼니 엘리자베스 모어의 『초파리를 알면 유전자가 보인다』가 기술(記述)이고, 설명이라면 김우재의 『플라이룸』은 주장이고, 발언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쓴 책이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면서 이처럼 다르다는 것이 놀랍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동안에 그에 대해 인식된 것이 있기에 그의 글이 무엇을 겨냥하는지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과학자가 사회, 특히 과학 사회에 직격탄을 날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그 과학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나는 흥미진진하면서, 혹은 얼굴을 붉히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걸 노렸을 것이다(그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만약 그때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했더라면 지금 이 책을 읽는 느낌이 좀 달랐을까?).
그의 생각, 주장, 혹은 발언에 동의하는 부분도 적지 않고, 또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고, 절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김우재 교수가 오로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만을 바라지는 않았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는 있다. 그리고 그런 동의함과 동의하지 못함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토론하는 장(場)이 이 책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바램도 기대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이 책은 충분한 자격을 갖는다. 다만 그럴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럴 만큼 읽힐 것인지, 그럴 만큼 그의 생각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는 이들이 있는지, 있다면 그들은 과학자일지,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일지, 과학 관료일지, 정치인일지 그런 것들이 궁금하고, 솔직히 의심스럽다. 그도 스스로 자신의 발언이 공허할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예상하는 것처럼, 이 책 하나로 한국의 과학과 과학자, 과학 사회가, 연구 풍토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다른 길을 찾겠다고 한다. 교수직을 그만둘 것이라도 한다. 그게 무언지 대충은 한다. 타운 랩(Town Lab). 대중과 함께 하는 과학을 하고 싶다는 뜻이리라. 그게 어떻게 현실화될지는 잘 모르겠고, 궁금하기도 하다. 잘 될까 싶은 우려도 있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러나 교수직은 유지했으면 한다.
잘 읽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만 남겨 놓는다.
우선 너무 자신의 글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이 책이 그 동안 쓴 글을 모으지 않은 것만으로도 경의를 받을 만하다고 했는데, 이러면 그 경의가 반감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글을 또 보라는 것은 자기 복제에 가깝고, 독자를 존중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띠지와 머리말에 “이 책이 어렵다면 그건 내가 독자를 존중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 책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과학도 그렇고, 과학에 대한 발언도 그렇다. 이 책을 독자들이 어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독자의 수준을 좀 낮춰 보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
*이 책을 낼 때까지만 해도 캐나다 오타와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최근 다음 책 『선택된 자연』에 소개된 약력을 보면 중국 하얼빈공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