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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밀라노 폭동과 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소설

알레산드로 만초니, 《약혼자들 1》

by ENA

잘 몰랐었지만, 알레산드로 만초니는 단테 이후로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문필가로 인정받는 작가다. 올해(2023년) 그의 사망 150주년을 기념하는 2유로 바티칸 기념주화가 발행되었다. 통일 전 이탈리아에 애국심과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글을 발표했던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사상은 이탈리아 통일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티칸 기념주화에는 “Quel ramo del lago di Como"가 쓰여 있는데, ”코모 호수의 지류“란 뜻의 이 문구는 바로 《약혼자들》의 첫 문장의 일부다. 《약혼자들》은 바로 만초니의 대표작이다. 오랫동안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해왔는데,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3번 읽고도 다시 읽을 예정이라고 했을 정도로 재미있다고 하면서 또다시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1840년에 출판된 《약혼자들》은 1628년부터 1630년까지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방적공이자 농부인 렌초와 그의 약혼녀인 루치아가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역 귀족이자 난봉꾼의 협박으로 결혼을 주관하기로 한 성당 신부가 협박을 받고 결혼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결국은 다른 지역을 도피하게 된다. 이처럼 귀족이나 종교인 같은 상류층이 아닌 하류층의 고난과 투쟁을 다룬다는 점에서 당시의 주류 문학과는 궤를 달리했기에 비판을 받았지만, 대신 오래토록 문학의 역사에 남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일단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탈리아의 모습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1628년의 빵을 둘러싼 밀라노 폭동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밖에도 전 유럽을 황폐화한 30년 전쟁, 14세기 이후 다시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의 위협도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는 아직 1권에는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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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만 보아도 만초니가 이 《약혼자들》이란 작품을 통해 당시 권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약혼한 처녀를 결혼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납치라려고 하는 것은 물론, 신부들은 민중들은 알지 못하는 라틴어를 쓰며 민중들이 자신의 편이라 여기도록 하면서 그들을 속인다(그는 “자비심이 제거된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다른 것처럼 망령이 되었다.”(188쪽) 며 형식에 치중하고 민중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 당시 종교를 비판한다). 또한 영주는 가부장적 권력을 통해 딸을 수녀원에 강제로 집어넣는다. 이렇게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면서 신학적 세계 대신실제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민중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근대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곳을 지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저곳에서 미래의 모든 계획을 세웠던 사람이 사악한 압력 때문에 멀리 떠나야 하다니! 한꺼번에 가장 친근한 습관을 버리고, 가장 소중한 희망이 좌절된 채 결코 사귀고 싶은 적이 없었던 미지의 사람들에게 가기 위해 저 산을 떠나면서 언젠가는 돌아오리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니! 안녕, 고향집이여. 마음속에 감춘 생각을 하느라 앉아 있는 동안 사람들의 발소리와 기다리는 발소리를 은밀한 불안감을 느끼며 구별할 수 있었던 곳. 안녕, 아직 낯선 집이여, 얼굴을 붉히며 지나면서 수없이 곁눈질을 하면서 훔쳐봤던 집. 영원히 평온한 신부의 거처로 생각했던 집. 안녕, 성당이여,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영혼이 깨끗해졌던 곳.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준비했던 곳. 마음의 은밀한 탄식이 엄숙하게 축복받고, 사랑이 명해지고, 신성한 사랑을 인정받는 곳. 안녕!”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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