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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거래한 음악가, 야만과 손잡은 국가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1, 2》

by ENA

(《파우스트 박사 1, 2》를 합하여)


토마스 만은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마의 산》도 있었지만, 자신 가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이듬해 독일은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 쪽에 경도되었던 그도 나치 정권의 위협에 시달렸고, 딸과 아들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스위스로,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나치는 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하고, 책을 공개적으로 불살랐다). 망명한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의 괴테’라 불리며 존경을 받았고,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 <독일 청취자들이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치와 히틀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독일의 양심’으로 불렸다. 나치가 일으킨 전쟁은 독일의 패망으로 끝났다. 그 시기,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고 전쟁 후 1943년부터 1947년까지 그는 한 작품을 썼다. 바로 《파우스트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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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박사》는 평범한 인문학 교수인 제레누스 차이트블룸이 천재적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에 대한 전기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애정에 찬 충격 속에 그의 삶의 비극”을 그린다고 했다). 소설이므로 아드리안 레버퀸은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을 이루는 배경은 지극히 역사적이며, 현실적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의 역사와 정신이 바로 그 배경이다. 차이트블룸을 비롯하여 레버퀸 주위의 인물들 역시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을 넘어서서 그들이 인용하고 비평하고, 찬양하는 인물들과 작품들은 모두 역시 현실적이며 역사적이다. 그러므로 토마스 만은 분명 자신의 분신인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독일을 애정과 함께 객관성의 시각을 갖고자 분투하면서 냉정하게 비평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와 문화, 음악과 문학, 그리고 그것들의 바탕을 이루는 정신, 나아가 그 정신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 나치와 그들에 동조한 독일인들까지.


파우스트 신화를 원용하고 있다. 아드리안 레버퀸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사랑을 포기하는 대가로 24년의 시간을 얻는다. 그 24년간 가히 광적이라 할 집중력을 가지고,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다. 그 독창성은 새로운 음악이면서, 새로운 정신이기도 했다. 새로운 음악이란 실제로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 새로운 정신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스러움과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반동의 낌새 같은 것이다. 토마스 만은 레버퀸이 악마와의 거래를 독일(인)의 파시즘 선택과 대비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독일이 악마와 계약을 한 것처럼 반동의 역사를 써나가는 중에야 비로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지성인이 예술가의 파멸을 통해 그 비극성을 토해내고 있다(“외로운 한 남자는 손을 포개고 말한다. 신께서 부디 너희 불쌍한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나의 친구여, 나의 조국이여.”)


이와 함께 소설은 예술에 대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레버퀸은 독특하면서도 음울한, 기존의 음악을 전복시킨 위대한 작품 <파우스트 박사의 탄식>을 작곡하고, 이를 발표한다면서 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이 24년 전 악마와 거래를 했고, 자신의 예술이 바로 그 거래의 결과이며, 자신은 사랑을 잃었다고 밝힌다.


“내가 이미 스물한 살 때부터 악마와 혼일을 했고, 위험스러움을 알면서, 충분히 생각한 끝에 용기와 자긍심과 대담한 마음으로,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 싶었기 때문에, 그와 계약하며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24년의 기한 동안 만들어낸 모든 것, 그리고 사람들이 당연히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모든 것은 오직 악마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며, 독(毒)을 가진 천사가 주조한 악마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그리고 작품을 연주하면서 쓰러지고 마는데, 이후 깨어났지만 조발성 치매라는 판정을 받고 다시 어린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1940년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악마와의 거래는 말하자면 정신질환으로 인한, 혹은 그 결과인데, 그 연원을 다시 따지고 들어가면 한 매춘 여인과의 하룻밤으로 벌어진 매독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실제로 매독은 뇌까지 침투해서 정신질환을 일으킨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예술이란, 창작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고통스런 과정에 대한 작가의 처절한 토로인 셈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예술가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서도 불후의 작품을 남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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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박사》는 그야말로 대가, 혹은 거장이 어떤 이인지를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단지 아드리안 레버퀸의 일대기만을 그리지 않는다. 차이트블룸의 글을 통해서나, 혹은 다른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토마스 만, 자신의 철학과 예술관, 문명관 등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단순히 어떤 내용을 피력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사변적인 것을 넘어서서 평생을 고민해오고, 다듬어오고, 또 깨달은 것들이다. 그것을 이처럼 쓸 수 있는 이가 바로 대가요, 거장이다. 토마스 만이 그런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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