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금 잦아든 것 같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핵무장론이 기세를 올렸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마당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니냐는 논리다. 우리는 우리가 지킨다는 이 논리는 사실상 북한의 논리와 별 다를 바 없다. 이 주장의 위험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그런 논리와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는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넘기고 자발적으로 비핵국가가 되었는데, 그 결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이 그런 논리와 주장의 배경이다. 이는 일본에도 이어져 ‘핵공유’와 같은 주장이 벌어지고 있다. 역시 위험한 주장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기본적으로 핵무기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핵무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지만, 아마도 그 꿈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손아귀에 쥔 강력한 패를 모든 국가가 스스로는 물론 강압적인 수단으로도 내려놓을 리가 만무하다. 역사 속의 무기의 발전은 항상 강력해져 살상의 범위와 정도가 커지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지, 개발한 무기를 포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핵무기라고 다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우리는 꿈꾼다. 그래야 세계가 보다 안전해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없다고 해서 분쟁이 없을 리 없으며, 핵무기가 없다 해서 인명 살상이 없을 리 없지만, 그래도 단 한 방으로 수많은 목숨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또 목숨을 건지더라도 오랫동안 피폭으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핵무기가 인류를 멸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로 많은 시간을 거슬러 후퇴시킬 거란 예측은 그저 공갈만은 아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기자 와타나베 다카시의 《슈퍼파워 미국의 핵전력》는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이상을 위해 ‘핵무기가 있는 세상’의 실상을 취재한 결과물이다. 가장 강력한 핵무기 국가인 미국을 중심으로(물론 취재의 한계 때문에 그랬을 거라 본다. 보다 완전한 취재였다면 러시아, 중국을 당연히 포함했을 것이다) 핵무기의 현실을 취재하여 그 실체를 보고함으로써 핵무기의 존재 이유에 대한 논의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핵시설을 직접 참관하고 취재한 경험, 적지 않은 수의 미국 핵무기 정책에 관여했던 이들을 직접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르포르타쥬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책을 넘어선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미국 핵전력의 3대축을 하나씩 취재하여 보고하고 있다. 미국 핵전력의 3대축이란 ICBM, 전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다. 이것들은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미국은 어느 하나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ICBM의 즉각성, 전략폭격기의 유연성, SLBM의 생존능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은 역으로 생각하면 위험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ICBM은 결정의 시간이 단 10분도 안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발사가 결정되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아무트 와타나베 다카시는 이들 3대 핵전력을 취재하면서 시설의 노후화를 목도하고, 시설을 운용하는 군인들의 스트레스와 판에 박힌 대답을 확인하고, 그 시설 주위 도시에 살고있는 이들의 태도(그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런 시설을 대가로 받는 것이 많기 때문에)에 위화감을 느끼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2010년대 이후의 미국의 핵무기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군축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화당 보수파와 타협하여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탄생시켰다. 오바마는 분명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을 꿈꾸고 그 계획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하기도 했던 오바마의 계획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방향을 꺽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사용할 수 없는 핵무기’, 즉 전략핵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 즉 전술핵을 증강하면서 실질적인 핵억지 정책을 밀고 나간다. 핵무기 선제불사용의 원칙, 혹은 핵무기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원칙 등을 폐기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증강 일변도의 핵무기 정책은 일단 멈춰졌고, 일단은 오바마 노선을 계승한다고 했다. 하지만 핵정책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 와타나베 다카시 기자의 평가다. 러시아의 핵무기 온존, 그리고 중국의 상황 등 현실이 이상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이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부족한 듯하다.
끝으로는 미국의 피폭자들을 다루고 있다. 맨해튼 계획 당시 핵무기를 실험했던, 그리고 그 이후에는 핵폐기물을 저장한 지역의 이들이 실질적인 피폭자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이들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자들과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표면적으로는 국가의 존망에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취재를 통해서 “재래식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의 핵무기, 그 절대적인 힘을 보유함으로써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국제정치상 핵보유국의 ‘신념’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거기에 군산복합체의 이해, 핵기지의 지역단체가 핵무기 시설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 등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건 다른 핵무기 보유국가들도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는 현실은 너무나도 위태롭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핵무기를 포기한 대가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러시아를 보면 핵보유국의 지도자의 결정 하나가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핵무기 있는 세상’의 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비록 이루기 힘든 과업이지만, 꿈꾸지도 못한다면 파국은 더욱 쉽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