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노 리치,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어릴 적 뇌에 박힌 게 절대 잊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태정태세문단세...’가 국사 공부에 커다란 도움을 줬듯이, ‘수헤리베붕탄질산플네...’가 화학 공부에 필수적이었듯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은 우리 태양계를 머릿속에 그리는 데 절대적이다. 물론 최근 ‘명(왕성)’이 이 목록에서 제외되었지만 그래도 내 입에 밴 말은 절대적으로 ‘수금지화목토천해’에서 끝나지 않는다.
종종 우주선 발사 뉴스를 듣는다. 과거에는 거의 미국의 뉴스였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발사하는 우주선 소식을 듣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한다. 그런 뉴스는 우주가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또 한 가지 뉴스가 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이 상업용 우주선을 개발하고, 실제 쏘아 올린다는 뉴스. 그야말로 우주여행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은 계산하기 힘든 수준의 재산을 가진 이들이라야 꿈을 꿔볼 얘기지만, 언젠가는 웬만한 사람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혹은 설레발을 치게 만든다.
우주우행이라... 꿈만 같다. 과거 허버트 조지 웰스 같은 천재적인 SF 작가의 소설에서나 가능했던 걸 실제로 꿈은 꿔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여행을 떠난다고 가정하고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볼지,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그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탈리아의 천문학 커뮤니케이터 에밀리아노 리치가 쓴 게 바로 그런 거다. 달에서 명왕성까지의 태양계를 섭렵하고, 결국은 저 아득하고도 아득한 은하계 너머까지 갈 수 있다 치고 신나는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다. 마치 SF 소설 같은 얘기라 여길지 모르지만, 상상에 기반하기보다는 엄밀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화성에 간다고 했을 때 어떤 곳이 가장 착륙하기 좋은 곳이며, 어떤 것이 가장 신기한 장면일 것이며, 가장 높은 산은 어디며, 등등 진짜 지구상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 가이드 책을 통해 알아봐야 할 것들이다. 거의 진짜 사실들 말이다.
에밀리아노 리치는 이런 우주여행을 통해서 단지 눈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부를 유도한다. 금성의 역주행을 해석하고,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갈릴레이의 이야기는 그저 역사에 관한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시간에 관한 이야기, 즉 빛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 카오스 이론에 관한 이야기, 태양계와 우주의 생성에 관한 이야기 등등 심화 수준의 과학 이야기를 여행 가이드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최종적으로 가이드가 고백하듯이 이 여행은 현재 가능하지 않다. 미래에도 아마 가능하지 않다. 왜 미래에도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그 가능하지 않은 이유 자체가 과학이기도 하다. 실망하지는 않는다. 가능하지 않더라도 상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저 우주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대단하고 놀라운 것이다. 또한 그런 앎을 통해서 더 풍부한 상상을 더해 갈 수도 있다. 과학은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