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Philip Roth)의 첫 번째 소설집. 20대 중반이던 1959년에 이 소설집을 냈다. 그리고 중편 <굿바이, 콜럼버스>를 비롯한 여섯 편을 모은 이 책으로 무려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여섯 편의 소설은 공통점이 분명하다. 모두 ‘유대인’ 혹은 ‘유대 사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대계인 필립 로스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고, 또 고민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년이 이렇게 천착했던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필립 로스지만 이후의 소설에서는 그다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가로서 초창기 때의 필립 로스를 이야기하는 데 이 소설집이 의미 있다.
앞에 이야기한 대로 여섯 편의 소설 중심에는 모두 유대인과 유대인 가정, 유대인 사회가 있다. 유대인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고,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에서 2세대, 3세대가 겪는 종교에 관한 문제, 전통에 관한 문제, 그리고 사랑에 관한 문제로 인한 정체성과 혼란 등을 다루고 있다.
표제작 <굿바이, 콜럼버스>(사실 제목을 봤을 때, ‘콜럼버스’가 사람 이름으로 여겼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하이오주의 주도를 말한다)에서는 스물세 살의 유대인 닐 클러그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우연한 기회에 호감을 갖게 된, 역시 유대인 집안의 브랜다 파팀킨과 사랑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닐 클러그먼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반면, 브랜다의 집안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끝이 난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 사랑이 가진 내재적 문제였다고 봐야 한다. 사랑에서 유대인의 종교라든가, 전통과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그들 사이에 깊게 놓여 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청춘의 사랑을 그런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개종>에서는 필립 로스가 경직된 유대 종교 교리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하고 있고, <신앙의 수호자>에서는 유대 종교나 전통을 핑계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엡스타인>은 유대인 가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이야기하는데, 가정의 위기와 봉합이 이뤄지는 상황이 좀 웃프다. <노래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유대인 사회라기보다는 전후 미국의 상황, 특히 매카시즘을 비판하고 있으며, <광신자 엘리>는 젊은 유대 변호사가 전통에 얽매이면서 공동체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는 또 다른 신참 유대인과의 갈등에서 오히려 미쳐버리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필립 로스는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비추어 이 소설들을 썼지만, 이를 굳이 유대인에만 한정시켜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문제는 유대인들만, 유대 사회만 겪는 것들이 아니다. 특수한 인물과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썼지만, 그게 보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소설을 많이 읽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