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대학 1학년 때 읽고 토론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기억은 거의 없지만 예상은 가능하다. 다시 읽었다. 과거 읽은 흔적은 그야말로 흔적만 남아 있어, 전체적인 줄거리만 기억나고, 세부적인 내용은 오히려 새롭다. 어찌 끝나는 것인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 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구체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
내용은 유명한 소설이니 내가 요약하거나 이 소설의 의의 등을 언급할 계제는 아니다. 몇 가지 달리(혹은 새롭게) 느끼고 생각한 것만 간추린다.
우선, 제목에 대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아마 조백헌 원장이나 혹은 건강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소록도 환자들의 천국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것과 함께 반대의 경우도 포함하는 것이란 걸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이성욱은 조백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원장님은 저들의 천국이라 하고 저들은 원장님의 천국이라”라고 언급했다. 그러니까 조백헌의 입장에서도 ‘당신들의 천국’인 셈이다. 왜 그가 그토록 좌절을 거듭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인물의 과거에 대한 부분이다. 소설에서는 여러 주요 인물의 과거가 들추어진다. 황희백 장로의 과거는 으스스한 기운을 가지고 스스로 밝히고 있고, 이상욱의 과거, 윤해원이나 서미연의 과거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거나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인물인 주정수 원장이나 사토의 경우엔 과거의 인물이니만큼 그 인물 자체가 과거다. 그런데 정작 조백헌 원장의 과거는 알 수 없다. 군의관이자 현역 대령으로 섬의 원장으로 부임해 오는 순간부터 그의 이력이 시작되고 있다. 의사로서 군의관이 되고, 대령까지 진급하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다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그가 어째서 섬과 섬사람들을 바꾸려 하는지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이순구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본다. 이성욱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이순구는 지영숙과의 사이에서 섬에서 거의 금지되어 있는 아이를 낳고,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운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 사람들의 신임을 얻게 위해 필사적으로 일을 하고 앞장서며 순시원의 자리를 얻어낸다. 결국은 아이를 섬에서 내보내는데, 그 이후는 이순구는 섬사람들에게는 배신자가 된다.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더욱 그악스럽게 섬사람들을 대했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그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고, 이순구는 이제 오히려 자신이 붙어 이웃 처지들을 노골적으로 외면하기까지 한다. 주정수 원장의 동상을 건립하자가 먼저 얘기를 꺼내고 그악스럽게 모금운동을 벌인 것도 그였다. 결국 ‘노루 사냥 사건’까지 벌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당신들의 천국』은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1960,70년대의 개발 독재를 고발하는 소설로 읽히고, 권력과 민중이 화해하기를 종용하는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또한 권력에 대한 욕망을 경고하는 소설로도, 권력이 우상화되는 과정을 비꼰 소설로도 읽힌다. 그리고 나병(한센병)이라는 지독한 질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생각하게도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