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말, 내러티브, 혹은 이야기. 인간의 진화가 신체에 관한 데만 머물러 있었다면, 인간은 지금의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들라면, 무척이나 많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다른 점을 들 것이다. 하지만 정말 결정적인 것을 들라고 하면, 나는 (이 책의 저자들처럼) 인간이 이야기를 한다는 점을 들겠다. 인간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집단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한 세대에서 획득한 기술과 사상을 다음 세대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역시 이 책 저자들의 용어이긴 하지만) ‘이야기하는 원숭이’다.
인간의 이야기는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인간의 이야기는 어째서 그토록 매력적인 것일까? 인간의 이야기는 얼마나 인간의 이야기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이야기에는 어떤 악독한 면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이야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인간의 이야기에 우리는 어떤 것을 보태고, 또 어떤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고칠 것인가? 이런 것들이 저자들이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저자들의 이야기는 영웅 서사를 따라간다. 열두 장의 제목이 바로 그런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기도 하다. 평온 세계에서, 모험을 떠났다 좌절하고, 멘토를 만나 여러 관문을 통과하고, 적들을 물리치고, 결국에는 승리하여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신화과 성서가 우리를 지배했던 시대도 있었고, 소설이 등장한 이후에는 소설에 빠졌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로 그런 영웅 서사를 익히고 즐긴다. 그런데 그런 서사,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만족할 만한 것인가? 혹은 바람직한 것인가? 그저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좋은 것인가? 저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물음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처음에는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얻어낸 것들, 그래서 인간의 삶이 집단이 얼마나 다채로워지고, 그래서 지금의 인간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인간의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까지가 그렇다(이를테면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스마트폰, 인스타그램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 인간이 이야기가 만들어낸 어두운 면들을 들추어내기 시작한다. 왜곡된 이야기는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 차별을 당연시하고, 독일의 유태인 학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기후 변화, 아니 기후 위기, 아니 기후 재앙을 만들어내면서 지구의 위기를 만들어냈다. 저자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이야기의 아포칼립스적 면을 아프게 들춘다. 그리고 그것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지만, 그 이야기가 언제나 아름다운 동화만은 아니다. 간혹, 아니 자주 잔혹 동화인 셈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잘 새겨 들어야 하는 이유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 혹은 역사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그것을 분석하는 사회학, 철학은 쉽지 않다. 다만 조금만 집중하고, 곱씹으면서 읽으면 충분히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건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니까.
몇 부분 옮겨본다. (중요한 부분이라기보다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의 출처로서 타인이 매우 귀중한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자 할 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출처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원숭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타인의 의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믿는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흘렸다.” (130쪽)
“언어가 우리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광범위하다. (중략) 영어로는 ‘그가 꽃병을 깨뜨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꽃병이 깨졌다’ 혹은 ‘꽃병이 깨뜨려졌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말다. 마찬가지로 독일어에서는 ‘팔이 부러졌다’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내 팔을 부러뜨렸다’라는 표현을 말한다. 반면 스인어에서는 통상적으로 ‘꽃병이 부서졌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누가 꽃병을 깨뜨렸는지를 밝히지 않고 말한다.
이러한 언어적 차이는 우리가 사물을 기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영어를 사용하는 목격자는 사고 유발요인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목격자는 그것이 의도되지 않은 사건, 즉 불의의 사고라는 사실을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 (169쪽)
“종교가 오랫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서사였던 이유는 문화와 역사, 문명의 범위 안에서 불공평하게 분배된 권력과 지배를 체계화 및 정당화하고 나아가 모든 초월성을 통제하는 권을 갖고 있었기 땜누이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에서 종교는 경쟁 상대가 생겼다. 자세히 말하자면 새롭게 두가지가 등장했다. 바로 소설과 경제다. 이 두 가지는 우연을 그저 신의 뜻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종교보다 그것을 더 잘 지배할 수 있었다. 이 둘은 생각보다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