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데이지 밀러』
줌파 라히리의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에서 스쳐가듯 헨리 제임스라는 이름을 읽었다(그래서 다시 찾으려 해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줌파 라히리의 책 다음으로 바로 집어든 책이 바로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다.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고 다음에는 읽기로 이미 계획했던 소설이다(더 정확하게는 줌파 라히리의 책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측면이 많다). 우연이다. 근데 이런 우연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1878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당시 미국인들은 유럽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어서 부유층 가족들이 오랜 시간 유럽 여행을 즐기고 이민을 가지고 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자유분방한 미국인들을 예의 없는 벼락부자라 비웃었고, 미국인들은 그들대로 유럽인들을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다. 『데이지 밀러』는 그런 문화적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소설이다.
이미 유럽 문화에 익숙해진 미국 출신 윈터본이 그지없이 예쁜 미국인 여행가족의 딸 데이지 밀러를 만나 반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데이지 밀러는 유럽인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남들과(남자를 포함해서)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단 둘이서만도 데이트를 하고, 길가 아무데나 앉아 떠들고... 경박하고 바람둥이 여자였다. 하지만 윈터본은 그녀가 예쁘다는 이유로 한 눈에 반하고 다른 이탈리아인과 자주 다니는 그녀를 질투한다. 더욱이 그녀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충고하다 감정을 상하게 하고 멀어진다.
데이지 밀러는 로마 콜로세움에서 밤늦게 이틸리아인 조바넬라와 데이터를 하다 병(말라리아)을 얻어 죽고만다. 죽기 전에 데이지 밀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조바넬라와 약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꼭 윈터본에게 알려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다는 것을 윈터본이 알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윈터본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데이지 꽃 사이에 뗏장도 입히지 않은 황토색 무덤’에 묻힌다.
헨리 제임스는 미국인으로서 유럽 여행을 많이 했고, 또 결국은 영국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국제적이라고 한다. 그는 유럽인이 바라본 미국 사회와 미국인, 미국인이 바라본 유럽 사회와 유럽인에 대해서 많이 썼다. 이 소설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미국 사회와 유럽 사회에 대해서 소설에서와 같은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출판이 거부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회마다 문화의 차이는 여전하다.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백안시해서 보는 경우는 지금도 흔하다. 그것이 갈등과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데이지 밀러의 가치관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럽인의 태도도 이해가 되고, 유럽에서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지 않는 데이지 밀러의 태도도 이해가 된다. 그 사이에서 그녀의 태도가 위태스러워보이고, 고쳤으면 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는 유럽에 동화된 미국인 윈터본의 태도는 더욱더 이해가 된다.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난감함이 이 소설이 가진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