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한 명의 천재의 것도, 한 순간의 것이 아니다

매트 리들리, 『혁신에 대한 모든 것』

by ENA

매트 리들리의 『게놈』을 거의 전공 공부하듯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읽고는 상당히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도 있다. ‘이성적’에는 동의했지만 ‘낙관주의자’가 펼치는 미래에 대해서는 의문이 갔었다. 그러다 그가 영국의 상원의원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통해서다. 그래서 매트 리들리를 소개할 때 세계적 과학 저술가이자 정치인이라고 한다(영국의 상원의원이 ‘진짜’ 정치인인가에 대해선 토를 달 이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 매트 리들리가 ‘혁신’에 관해 썼다. 원래 생물학 전공이지만,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부터 범위를 넓혀 왔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무엇인지 애매하기만 한 주제를 이처럼 신랄하고, 명확하고, 풍부하게 써내는 것을 보니 역시 매트 리들리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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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혁신과 관련해 여러 분야(에너지, 공중 보건, 교통, 식량, 생활, 통신과 컴퓨터)의 사례 중심인 1부가 훨씬 재미있다. 2부는 1부에서 보여준 것들에 대한 정리 내지는 매트 리들리의 견해, 주장인 셈인데, 2부의 절반 정도는 이미 1부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라 반복하는 느낌이다.

매트 리들리는 혁신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를테면 과학이 선도하고 기술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혁신가들은 과학적 원리를 모르면서도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혁신을 이룬다. 혁신은 어떤 한 순간의 번쩍하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매우 연속된 현상이라는 것도 지적한다. 그래서 천재적인 영감과 능력을 지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놀라운 것이 동시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그게 나올 만하기 때문에, 아니 나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왔다는 견해를 펼친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라이트 형제가 아니더라도 동력 비행기는 바로 그 시기 언저리에 나왔을 것이고, 저커버그가 없었더라도 페이스북(꼭 그 이름은 아니었겠지만)이 나왔을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은 나중에 돌이켜 보면 아주 명백하다. 물론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에 관한 몇 대목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혁신은 엘리트가 영예를 가져가기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어 서서히 진행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67쪽)


”내연기관 이야기도 혁신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보다 앞서 오랫동안 실패로 점철된 역사가 있고, 개선을 통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거의 동시에 특허 출뤈과 경쟁이 발생하는 더 짧은 기간이 있고, 그 뒤에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적 개선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나타난다.“ (105쪽)


”혁신은 한 개인이 일으키는 현상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점진적이고 혼란스럽게 뒤얽히 네트워크 현상이다.“ (110쪽)


”하버의 영감보다 보슈의 땀이 활약할 때 훨씬 더 많은 창의 필요했다.“ (145쪽)


”그런 영웅 신화는 왜 지속되는 것일까? 아마 사람들이 자신도 어떤 한 차례 상상의 도약을 통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기 땜누일 것이다. 그런 주술적 사고는 대다수 진짜 혁신가의 특징을 심하게 오도한다. 실제로 혁신은 덜 인상적이고 더 고되게 이루어진다.“ (188쪽)


”혁신이 평화롭고 비교적 번영하는 시기에 부유하고 성장하고 교류가 잘 되는 곳에서 꽃피우는 것처럼“ (251쪽)


”혁신으 뇌 속에서가 아니라 뇌 사이에서 일어나는 집단 현상이다.“ (265쪽)


”인류 혁신의 대부분이 지적 설계를 통해 만들어지기보다는 지극히 자연선택처럼 보이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 (288쪽)


그런데 그는 상당히 논란이 될 만한 발언도 거침없이 한다. 이를테면 지식재산권과 유전자변형생물(GMO)에 관한 것이다. 그는 지식재산권, 즉 특허가 제약산업과 같은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혁신을 방해한다고 본다. 특허는 혁신을 장려하기 보다는 혁신을 막는 데 훨씬 많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특히 유럽 같은 곳에서 GMO를 막는데, 이것은 근거도 없는 혁신을 대한 저항이라고 본다. 또한 전자담배를 옹호하는데, 주의할 것은 그가 담배를 매우 무가치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냥 담배를 피울 바에야 전자담배가 낫지 않냐는 것이다. 이처럼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도 매트 리들리다운데, 이와 맞서려면 상대방도 그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버거운 상대이긴 하다.


참고로 그는 혁신에서 과학이 과학자가 별로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과학이 가치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과학이 인류가 성취한 가장 큰 결실이라고 본다.


”과학 그 자체를 가치 있는 목표로 삼아야 한다. 과학은 씨앗보다는 열매라고 봐야 한다.“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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