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하워드 블룸, 『암살자의 밤』

by ENA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의 위세는 대단했지만, 소련 모스크바까지 밀고 들어갔던 동부 전선에서 패하면서 전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독일은 버티고 있었지만, 완전한 승리는 물 건너갔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좋은 상황이라고 여긴 것은 평화 협정을 통해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를 비롯한 연합국은 ‘무조건 항복’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사실 당혹스러워했다. 어쩌면 가장 불행한 사태(그 사태는 실제로 벌어졌다)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독일이 평화 협정을 통해서 유리하게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국가보안본부 제6국 국장 발터 셀렌베르크는 그 방법은 연합국의 수장에 대한 암살밖에 없다고 여겼다.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을 암살한다면, 물론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메꾸긴 하겠지만, 연합국이 전쟁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크게 약화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고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예요원을 양성하고, 빅3의 동태를 끊임없이 추적했다.


반면 미국 백악관 비밀경호국의 책임자 마이크 라일리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보스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대통령이 백악관 깊숙이 몸을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전쟁을 지휘하고, 미국민들을 독려하고, 연합국의 다른 수장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야 했다. 불가피하게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마이크는 그를 지켜야만 했다.


셀렌베르크에게 기회가 왔다. 빅3가 회담을 위해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언제 만나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을 안다고 해도 어떻게 침투해서 셋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도 막막했다. 하지만 독일의 스파이망은 결국 알아냈다. 1943년 11월 빅3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회담을 하기로 했고, 이란이라면 아직 독일의 스파이들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셀렌베르크와 마이크의 지략 싸움, 그리고 스파이와 암살자들의 동태, 이를 알아차리기 위한 소련 첩보망과 방첩 부대의 대응 등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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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블룸의 『암살자의 밤』은 바로 이런 독일 정보기관의 미국, 영국, 소련의 수장들에 대한 암살 기도, 즉 ‘롱 점프(Long Jump)’ 작전을 다룬다. 물론 이 작전에 실제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야 공개된 자료와 더불어 다양한 문헌을 조사한 하워드 블룸이 이 작전이 실재했으며, 최종 순간에야 막을 수 있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 스피디한 전개 양상과 교묘한 지략 대결은 좀처럼 책장을 놓게 만들지 않는다. 냉전 시기 이중 첩자로 이름을 드높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에 대한 벤 매킨타이어의 『스파이와 배신자』를 읽고서 영화나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다고 했었는데, 『암살자의 밤』은 그것을 몇 배는 뛰어넘는 흥미진진함을 주고 있다. 분명히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거란 확신도 갖게 한다. 이런 게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결말은 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가려져 있는 것이 정말 많다.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임에도 정말 흥미진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바로 이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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