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시오니즘 혹은 야만

조슈아 코언, 『네타냐후』

by ENA

‘네타냐후’. 제목으로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현재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설마 그 인물일까 싶었다. 물론 그는 아니다. 그런데 또 그와 상관없지도 않다. 소설 제목의 네타냐후가 베냐민 네타냐후의 아버지를 의미하니까. 그리고 베냐민 네타냐후가 소설에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은 미국의 유명한 문학 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회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블룸에 대해서는 소설적 가공을 거쳐 코빈대학의 역사학자 루벤 블룸으로 나온다. 시온주의의 선봉에 섰었고, 수정주의 입장에 선 벤-시온 네타냐후와 그의 가족에 대해서는 아마도 블룸의 회고에서 거의 고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 일화는 그렇게 거창하지도 않고, 길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의 무명 학자인 벤-시온 네타냐후에 대한 코빈대학의 채용위원회 일원이 된 블룸은 면접을 하러 올 네타냐후를 맞이할 책임을 맡는다. 그런데 당연히 혼자만 올 거라고 예상했던 네타냐후는 아내는 물론 자식 셋과 함께 블룸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그리고는 소동이 벌어진다. 네타냐후 가족은 손님으로서의 체면이나 예의는 하나 없이 블룸의 집을 헤집고, 가족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물론 그 일화에 이르기까지에는, 그리고 그 일화 중간에 네타냐후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시각에 대해서 길게 소개하고 있고, 그런 학문적 시각과 현실의 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도, 실제로도 벤-시온 네타냐후는 시온주의 역사학자로, 역사를 유대인의 관점과 신념에 따라 해석한다. 그래서 "유대인의 과거를 정치화해서, 그들의 트라우마를 선동으로 바꿔놓는 경향"이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 네타냐후의 관점이 아들에게도 전해졌음을 암시하는 것을 물론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부제가 '매우 유명한 가족의 역사에서 사소하고 무시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보더라도, 그런 정리된 부분보다도 바로 그 불쾌한 가족이 벌인 짓에 대한 묘사가 조슈아 코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화는 네타냐후라는 인물과 그 가족의 성격에 대해서 굉장히 희화적으로 그리고 있고, 그런 성격은 아마도 현재 이스라엘의 총리인 인물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화가 있어서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고, 독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것 말고도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땅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문제와 시온주의자들을 접하면서 느끼게 되는 이중적인 감정 등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조슈아 코언이라는 소설가가 그런 유대계 작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가진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202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미국의 지식인들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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