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용어의 의미 변천

윤혜준, 『근대 용어의 탄생』

by ENA

용어는 인식을 좌우한다. 어떤 용어의 의미가 과거에 쓰이던 것과 달라졌다면 그 용어를 둘러싼 인식의 지형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우리는 현재 그 용어의 지형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이를테면 ‘아메리카’는 거의 ‘미국’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좀 더 넓게 보면 남북아메리카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아메리카란 말을 쓸 때 미국을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말이 어떻게 형성되어 오고, 또 의미가 변천되어 왔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좀 깊은 의미가 있기도 하다. 사람들의 인식의 지형이 바뀌어 온 것은 현재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보는 것이고, 그 말에 담긴 다양한 층위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혜준의 『근대 용어의 탄생』은 바로 그런 작업, 즉 우리가 현재 별 다른 생각 없이 번역해서 쓰고, 받아들이고 있는 용어들이 근대 이후 어떻게 그 의미가 변해왔는지를 용례와 관련해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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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용어들은 번역에서 그 의미가 다소 달라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capitalism)가 그렇고, 경쟁(competition)이 그렇다. 또한 헌법(constitution)이 그렇다.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번역함으로써 그렇게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얘기다. 서구에서부터 그 의미가 많이 바뀐 경우도 있다. 계몽(enlightenment)이 그렇고, 산업(industry)이 그렇다(이 ‘산업’의 경우는 상당히 기가 막히게 번역한 케이스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president)의 경우는 받아들이면서 용어 자체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족쇄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용어들이 근대 이후 그 의미가 달라져 왔다. 완전히 반대의 경우도 있고, 의미가 축소된 경우, 반대로 확대된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엔진(engine)은 기계 전체를 의미하였던 것이, 그 의미를 machine에 넘겨주고 그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다양한 용어들의 용례를 통해서 그 의미의 변천과 인식의 변화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을 들라하면, 나는 ‘~주의’라는 말에 관한 부분이다. 이 책에서 ‘~주의’를 표제어로 쓰인 경우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정도인데, 윤혜준은 이 번역이 잘못되었고, 그래서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의(主義)’라고 하면 ‘주장’이나 ‘체계화된 이론’인데, capitalism이나 democracy는 그런 의미보다는 좀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Capitalism은 말하자면 “시장경제의 한 측면이나 단계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지, 사회주의(socialism)처럼 의식적인 정치운동이나 이념은 아니라는 얘기다. Democracy도 마찬가지다. 흔히 공산주의에 맞서는 의미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지만, 이 역시도 어떤 이념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체제’를 의미한다는 지적하고 있다. ‘-ism’을 무조건 ‘~주의’로 바꾸는 관행이 capialism을 자본주의로 번역하도록 하였다면,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음에도 고착화된 용어가 되었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 이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은근히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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