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성, 『야구의 나라』
야구를 우리나라의 국기(國技)라고는 하지 않지만 우니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는 걸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야구의 나라‘라는 타이틀은 과장되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지만, 올 한 해 프로야구 관중 수가 천만을 바라본다는 뉴스를 보면 어쩌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나? 물론 야구팬이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아니 그 이전 선린상고와 경북고가 맞붙던 고등학교 야구 때부터 나는 야구팬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이처럼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걸까? 사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의문을 자주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걸 스스로 캐물어본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나라가 많지도 않은 이 스포츠를 우리나라는 좋아하게 된 걸까? 그냥 미국-일본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그저 빠져든 걸까?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야구만큼이나, 아니 야구보다도 더 좋아한다는 미식축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이유는? 농구의 인기도 정말 말도 못했는데, 점점 식어버린 이유는 뭘까? 등등의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늘어난다.
스포츠산업을 전공하면서 야구팬인(아쉽게는 LG 트윈스의 팬이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 팬인) 이종성 교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야구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과정, 일본의 스포츠인 야구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면서 우리나라에 착근된 과정, 해방 이후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어간 과정, 프로야구가 생기고 부침을 겪는 과정 등을 종적으로, 횡적으로 탐구해나갔다.
그런데 이 작업을 통해서 살펴본 이야기는 우리나라 야구사(史)가 되어 정말 말도 못하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기의 선수들 이름은 종종 낯이 설지만, 전혀 생경한 이야기들이 아니고, 해방 이후에 활약하는 선수들, 감독들, 야구에 종사하고, 후원한 이들의 이름은 이미 낯이 익어 그들을 연결하는 작업은 신이 나기도 한다.
그런 재미를 뒤로 하고, 애초의 질문, 왜 우리나라는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걸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대충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에 많은 영향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은 별로 야구에 탐탁치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식민지 조선에 도입하면서 엘리트들에게 전파했다. 즉 고등보통학교와 상업학교를 중심으로 팀을 만들고 대회를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야구는 민중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명문교의 자존심과 연관되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의 지원으로 활성화되었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장비가 축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군정의 후원을 받으면서 야구는 맥을 이어나갔고, 이후에는 일제 강점기 시기의 상황과 비슷하게 수도권이나 지방의 명문고교를 중심으로 엘리트들의 스포츠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은행단 야구가 탄생하고, 일제 강점기 때 명문고를 나오고 해방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 이후 미국에서 유학하며 야구를 접했던 이들이 야구를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기에 신문사들이 나서서 대회를 만들면서 이런 흐름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리고 82년 프로야구가 탄생했다.
신군부 집권 이후 프로야구의 탄생은 그렇게 깔끔한 과정은 아니었다. 이미 75년부터 흐름이 있어왔고 계획서도 있었기에 축구보다 더 빨리 프로화가 되었지만, 프로야구가 생긴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다분했다. 더욱이 이후에 펼쳐진 지역감정과의 연관성은 어쩌면 뼈아픈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야구는 대중화가 되었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야구는 대중의 스포츠로 시작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들의 경쟁과 같은 다분히 스포츠 외적인 이유에서,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북돋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성장한 지금의 야구를 외면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본다. 지금의 야구는 지금의 야구다. 지금도 못마땅한 면이 없지 않지만, 야구는 그래도 야구다. 누구는 ’그깟 공놀이‘라고 하지만,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어떻게 하진 못한다.
(방금 LG 트윈스가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동점이 되는 걸 보면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