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유머, 안톤 체호프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by ENA

이즈쓰 도시히코의 『러시아적 인간』에서 맨 마지막으로 소개한 작가는 안톤 체호프였다. 이즈쓰 도시히코는 체호르에 대해 “푸시킨을 닮은 명징한 예지의 문체로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인간과 그 구원의 가능성을 찾은 체호프”라고 썼다. 푸시킨에 대해 잘 모르니 문체가 어떻게 비슷한지, 아직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으니, 그가 찾은 인간과 그 구원의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체호프의 소설은 그냥 체호프의 것으로 이해해 낼 수밖에 없다.


체호프의 10편의 단편을 모은 민음사 판의 “체호프 단편선”을 굳이 찾은 이유는 <베짱이>와 <티푸스> 때문이다. 두 작품부터 읽기도 했다. 두 단편만 읽고 덮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체호프 아닌가?

거의 다 읽으면서 체호프의 작품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봤다.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우울함, 죽음이 늘 곁에 있는 듯한 느낌. 그러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해학적 해석. ’우울한 유머‘, 이렇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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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체호프인지라 질병과, 그 질병에 따르는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디프테리아를 다룬 <베짱이>나 발진티푸스로 인한 죽음을 다룬 <티푸스>, 그리고 장티푸스로 주교가 죽는 <주교> 같은 작품은 물론 <관리의 죽음>도, <드라마>도, <거울>도 질병과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거나 배경이 되고 있다.


질병과 죽음은 늘 비참한 것이긴 하지만, 체호프의 소설에서 질병과 죽음은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독특하다. <베짱이>에서 디프테리아로 인한 남편의 죽음은 여인의 허영심과 어리석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드라마>에서의 느닷없는 죽음(실은 살인)은 무의식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정신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티푸스>에서는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는 주인공의 생존의 기쁨이 그에게서 감염되어 죽은 누이를 대비시키며 인간의 잔인한 실체를 은밀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걸 유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체호프는 이런 주제들을 심각하게 바라보면서도 표현은 매우 해학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리고…… 죽었다.”(<관리의 죽음>)이나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드라마>)와 같은 한 문장으로도 그런 해학적인 방식이 나타나기도, <베로치카>나 <미인>에서처럼 분위기나 전체 상황을 통해서 그런 유머가 드러나기도 한다. 체호프가 얼마나 ’재미있는‘ 인물이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는 세상을 그저 밋밋하게만 바라보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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