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 샤피라, 『철학이 있다면 무너지지 않는다』
하임 샤피라. 들어본 것같은 이름이라 찾아봤더니, 전에 그의 『n분의 1의 함정』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수학책이다. 이름만 같은 사람인가 해서 확인해봤더니 동일 인물이다. 이 책에서 저자 소개에는 “철학자”를 앞세우고 있다. 이어지는 소개, “베스트셀러 작가, 수학자, 연설가, 피아니스트, 게임 이론가”. 이럴 수 있겠나 싶지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요즘 대학에서 ’철학‘이라고 하면, 주로 인식론 쪽의 학문을 의미하지만 철학은 원래 삶의 태도에 대한 지침, 혹은 이야기였다. 하임 샤피라는 바로 그런 삶의 지침으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혜, 우정, 용기, 사랑, 행복 같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많은 현자들이 이에 관해서 이에 관해, 많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그 말들을 파편적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또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을 내 삶에 어떤 계기로 삼고, 무언가를 실천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옳다고 여기거나, 혹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니면 아무 느낌 없이 지나거나 결국엔 똑같아져 버리고 만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던 방식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철학은 있다. 그게 일관되지 않을 뿐이며, 때로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나? 두 번 주어지지 않는 내 삶을, 그래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혹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떤 말을 남겼는지. 하임 샤피로가 담은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다.
하임 샤피로는 자신의 이 책이 ’베갯머리 서책‘과 같다고 했다. 책 첫머리에 소개하고 있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세이 쇼나곤이라는 궁녀의 책 제목이 바로 ’베갯머리 서책‘이다. 세이 쇼나곤은 일기 형식의 그 책에서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며 느낀 것들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성찰은 굉장히 현대적이라고 한다. 하임 샤피로가 자신의 책을 ’베갯머리 서책‘에 비유한 것은 좀 다른 이유이긴 하다. “머리 위에 뒤고 틈이 날 때마다 손 가는 대로 읽는 책”을 의미한다(세인 쇼나곤의 책도 그렇긴 할 것 같다). 그렇긴 하다.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에 관해, 그런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일관대게 쓰고 있지만, 어느 부분을 떼어놓고 읽더라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우정에 대해 궁금해지면, 사랑에 대해 궁금해지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지면 그 부분을 다시 펼치고, 현자들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맞닿고, 또 충돌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덮으면 될 일이다.
저자가 주로 언급하는 사람과 책들이 있다. 이를테면 장자와 노자(『도덕경』 같은 책), 스토아 학파(에피쿠로스를 대표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등등. 그들처럼 오래된 이들만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현란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그들의 말은 은유이지만, 또한 직접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문제는 그들의 말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운 가운데 읽었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의문스러운 가운데 읽었다. 그래서인가? 다음의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단기적으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가 크게 감소하고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해야 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고 어떤 형태로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77쪽)